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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10, 2018

유럽 여행 (17): Hesse Museum in Montagnola, Switzerland

8월 13일. 이번 여행에서 가장 설레임으로 기다려 온 곳, 몽테뇰라(Montagnola)에 있는 헤세 뮤지엄에 가는 날이다.

헤세와의 첫 만남은 아주 오래 전, 내가 중학교 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로 언니, 오빠들이 넷이나 있는 가운데 막내로 자라면서, 덕분에 내가 모르는 책들을 책꽂이에서 발견해 읽는 기회가 많았다. 하루는, 뭐 읽을 책이 있나- 하고 책꽂이를 이지저리 훑어보다가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이 있어 꺼내 들었다. 바로 헤세의 '지와 사랑 (원제: Narcissus and Goldmund)'. 내 기억엔, 이 책이나 저자에 대해 거의 모르는 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읽는 동안 이 책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때 이미 내 안에 자라고 있던 'wanderlust'에 크게 어필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작된 헤세와의 만남은, 그 후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의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는 열정으로 이어졌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책들을 구하기 위해 서점에 연락하며 애쓰던 기억도 있고. 소설 뿐 아니라 그의 시집과 에세이집도 읽으면서, 그가 살았던 삶의 단편들, 그리고 그가 가치를 두었던 것들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그 중의 많은 것들에 공감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로 대학원에 가고, 또 미국에 이민와 사는 동안 거의 잊고 지냈었던 작가. 그의 책을 다시 펼쳐볼 기회도 거의 없었고. 그러다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벨지움의 Genk에 있는 동안 독일의 도시들을 한, 두군데 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벨지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가 어디가 있을까 물색을 하던 중에 문득 헤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그가 살았던 곳은 어디였는지 궁금했고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그는 독일의 칼브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1877년) 스위스 바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시 독일에 돌아가 살았다. 1912년에 독일을 떠나 스위스 베른으로 옮겼고, 1919년 스위스 몽테뇰라로 옮겨 1962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내가 읽은 그의 책 중 대부분의 작품이 이 몽테뇰라에서 쓰여졌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나게 된 작품 '지와 사랑'을 포함해.

몽테뇰라에 대해 알게 된 후 이곳을 찾아가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 여행 일정에 포함시켰고, 드디어 이 날 그가 살았던 곳과 그의 삶의 기록들이 보존되로 있는 헤세 뮤지엄을 찾게 된 것이다.

하루 전에 버스를 타고 밀란에서 루가노에 도착하면서 가슴 찡하게 밀려왔던 감회- 드디어 그가 그의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냄새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에 더해 강한 설레임으로 헤세 뮤지엄으로 향하다. 루가노에서 버스를 타고. 비가 내리는 날씨.

조그만 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목적지에 도착. 들어가는 문 바로 옆 벽에 그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었다. 그에 관한 책 어딘가에서 본 듯 낯익은 모습.

우선 지하에 있는 조그마한 비디오룸에서 그에 관한 기록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한층씩 올라가면서 그의 사진과 그가 손수 그린 그림들 - 더러는 편지 안에, 더러는 조그만 카드에 글과 함께 그려진 -을 감상했다 (그는 사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힐링의 한 방법으로)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책상과 그 위에 전시된 그의 편지들, 그가 쓰던 타이프라이터, 그의 안경과 우산, 모자까지, 아주 개인적인 물품들도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가졌다. 또한 그가 소장했던 다른 작가들의 책들이 꽂힌 책꽂이도 전시되고 있어서 잠시 살펴보았는데, 내가 읽고 좋아했던 몇몇 책들을 볼 수 있어서 많이 반가웠다.

서두름 없이, 하나하나 그의 기억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마치 정말 그의 집을 방문하고 있는 느낌- 그의 책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곳에서 제공한 영어로 된 그에 관한 설명이 담긴 자료들을 읽으면서 아주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도 받다.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도 쓰면서 보내면 아주 좋겠다는 바램도 들었고.

점심 때가 되어 요기를 하기 위해 잠시 근처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들렀다. 식사 후엔 헤세 뮤지엄 바로 옆에 있는 까페에 들렀는데, 이곳은 온통 헤세에 관련된 것들 - 그의 엽서와 책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벤트의 포스터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그를 소재로 한 커피잔 등의 기념품들도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한편으론, 그를 브랜드화 시켜 비지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 씁쓸하게도 생각되었다. 정작 헤세 자신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시 헤세 뮤지엄으로 돌아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근처에 있다는 그의 묘지를 보러 가다. 15분쯤 걸었을까-. 한 교회의 모습이 보이고 그 건너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묘지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게이트 바로 앞에 헤세가 쓴 글이 낮은 돌기둥 위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안식처를 찾는 중에 이곳 몽테뇰라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곳에 옮겨와 살면서 얼마나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이곳에 자신이 묻힐 자리를 손수 마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공원 안으로 들어가 그의 묘지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눈에 잘 띄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 밖으로 아주 소박한 그의 묘지. 그저 투박한 돌 하나 덩그러니 묘비로 놓여 있는. 묘비에 있는 이름도 쉽사리 알아볼 수 없어서, 이곳이 그의 묘지가 맞는지 몇 번 확인해야 했고. 서글픔이랄까, 안스러움이랄까, 그런 감정들이 밀려왔다. 묘지가 화려할 필요도 없고, 또한 헤세 자신의 유언에 의해 그의 묘지가 그렇게 준비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이렇듯 소박한 묘지가 그가 추구했던 삶과 어쩌면 잘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듯 '보잘 것 없는' 그의 묘지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헤세의 묘지를 방문하고 묘지 공원 앞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내 마음에도 촉촉하게 비가 내렸다.


오래 전에 읽은 헤세의 책들.
중간에 낡아서 표지가 사라진 책이 바로 '지와 사랑'.
헤세와의 첫 만남이 된 책이다


헤세 뮤지엄.
그의 삶에 관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






그가 쓰던 타이프라이터





그의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쓰던 화구들-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그림들 그리기 시작했단다






1946년 그가 받은 노벨 문학상 증서

첫번째 이탤리 여행을 떠나는 헤세



헤세 뮤지엄 바로 옆, 그가 살던 집





헤세의 묘지가 있는 묘지 공원 입구에 있는 그의 글

묘지 공원 바로 앞의 교회



헤세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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