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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3, 2016

피아노와의 인연


어린 날의 꿈을 기억하는지. 이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누가 물으면 머리 속에 떠올리곤 하던 것들. 그 '이다음'이 이미 과거가 된 지도 오래인 지금, 내 어린 날의 꿈 중에서 아직 그 시효가 만기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

피아노와 나의 인연은 내가 다섯살 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옆집에 살던 친구가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내겐 그게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엄마를 졸라 결국 같은 동네에 사는 피아노 선생님에게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때로 꾀를 부리며 가기 싫어했던 적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레슨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바이엘 하권을 거의 끝낼 무렵 선생님께서 시집을 가시는 것과 함께 내 피아노 레슨도 끝이 났다.

그 후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버스로 서, 너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던 오빠 친구 집에서 레슨을 받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꽤 먼 거리를 걸어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던 기억. 결국 한 달인가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고.

그 후로도 계속 피아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얼마 후 회사 근처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고 점심 시간을 이용해 레슨을 시도하기도 했고. 하지만 취재를 하다보면 점심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이 힘들었고, 결국 몇 번 채우지 못하고 포기.

그 후로 직장 생활과 대학원에서의 공부, 미국으로의 이민, 박사 과정을 거쳐 다시 일을 하면서 보내온 오랜 시간 동안 마음 한 구석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던 꿈. 그렇듯 희미하게 남아 있던 불씨가 활활 타오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 2011년 여름 'Hollywood Bowl'에서 러시안 피아니스트인 Olga Kern의 연주를 보게 되면서다. Los Angeles Philharmonic과 Rachmaninoff의 Rhapsody를 협연한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면서 말 그대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2011년 8월 26일자 포스팅에서 나의 '첫번째 Hollywood Bowl 경험'을 얘기한 적 있다)

그녀의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그 '가슴 벅참'은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나를 설레게 했다. 오랫 동안 한 켠에 잠자고 있던 꿈이 강하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느낌으로. 결국 곧 시작된 가을 학기에 집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초급 피아노' 클래스 수강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연세 지긋하신 한 교수님의 클래스. 첫 시간에 학생 한사람한사람씩 돌아가며 왜 이 피아노 클래스를 듣게 되었는지 얘기하라고 하셨을 때 내가 나눈 이유는,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어서'였다. 뭐가 되고 싶다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피아노를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유롭게, 감정이 흐르는 대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도록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배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고. 그저 가능한 한 오래 동안 배우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첫 학기. 주어진 과제 중 하나는, 교실 앞 단상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청중으로 연습한 곡들을 연주하는 것. 한 학기 동안 서, 너번인가를 연주해야 했다.  오랫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경험이 있어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에 별다른 두려움이 없는 나였지만,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 긴장과 떨림 속에서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도 모르게 연주를 마치고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로 무대를 내려오던 경험들.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와의 '해후'는 2년 반 동안 초급, 중급, 고급 피아노 클래스를 듣는 것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들을 피아노 클래스가 없게 되었을 때 큰 맘 먹고 이 학교의 'applied program'에 지원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해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정의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피아니스트'란 이름을 가질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제 아주 작은 목소리로나마 '나도 피아니스트'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큰 목소리로 자신있게 얘기할 만큼의 수준은 못되지만, 그래도 이제 몇 곡의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고 이들 곡들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은, 피아노를 계속 공부하는 것과 함께 얼마전 시작한 음악 이론 공부를 계속해서 음악에 대한 보다 깊고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직접 음악을 만들어 보고도 싶다. 또한 언젠가 '이야기가 있는 컨서트'를 갖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다. 이제 이렇게 그 꿈의 씨를 뿌린다.  







*아래 곡명을 클릭하면 audio file로 연결된다:

Nocturne in e minor by Frederic Chopin [2016년 1월 30일 녹음]
Piano Sonata in c-sharp minor, Movement 1, by Ludwig van Beethoven [2016년 6월 7일 녹음] - '월광 소나타 (Moonlight Sonata)'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곡이다.
Reverie by Claude Debussy [2016년 7월 11일 녹음]
Intermezzo, Op.118, No.2 by Johannes Brahms [2017년 3월 1일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