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다. 뉴욕에 살든지, 뉴욕에 살지 않든지. 내게도 뉴욕은 꿈의 도시였다. 오하이오에서 공부하는 동안 서, 너번인가 이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편도 5백 마일이 넘는 장거리를 운전해서, 이 도시에 발을 딛는 순간 엄청난 생동감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었다. 갈 곳도 많고, 할 것도 무궁무진한 도시. 졸업 후 1년 반 동안 이곳에 살면서도 (실제 집은 뉴저지 Fort Lee였지만, 주중이든 주말이든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맨해튼에서 보냈으니 이곳에 살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끊임없이 이곳을 탐구했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지만, 이따금씩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곧 다시 그 생동감을 경험하곤 한다.
그동안 많이 그려오던 뉴욕을 지난 봄방학 동안 여행했다. 4월 8일부터 14일까지 한 주 동안. 미대륙을 횡단해서 오고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총 5일 반을 뉴욕에서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던 곳들에 가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실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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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pper Manhattan 하이킹
4월 8일 토요일, 비행기 연발로 예정보다 두시간 늦게 밤 11시가 가까워 LaGuardia 공항에 도착. Astoria에 예약해 둔 Airbnb에 도착해 대충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게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일찍 잠이 깨었고.
이날은 Upper Manhattan을 하이킹했다. 뉴욕에서 한번도 하이킹을 해 본 적이 없던 차라, 그리고 Upper Manhattan은 그동안 돌아다녀 본 적이 거의 없던 차라 더욱 큰 기대를 안고. Fort Tryon Park과 Inwood Hill Park을 중심으로 두 시간쯤을 하이킹했다. 서쪽으론 Hudson River 건너 New Jersey가 보였고 북쪽으로는 Bronx도 건너다 보였다. 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여기저기 봄 꽃들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어서 더욱 즐거움을 더해 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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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t Tryon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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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가운데 나무 뒤로 보이는 Cloisters.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할. 전에 이곳에 살았을 때 가 본 기억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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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에 보이는 Manhattan과 오른쪽 Bronx를 이어주는 다리 |
2. Governors Island
4월 10일 월요일엔 Governors Island를 찾았다. 맨해튼 Wall Street에서 ferry를 타고. 이곳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1900년대 말까지 군사 요지와 군인들의 훈련장으로 쓰여졌고, 2005년에 일반인들을 위한 공원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는 투어가 있는데, 아직 시즌 전이라 아쉽게도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섬 지도를 가지고 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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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 |
3. The Juilliard School of Music
줄리아드 음대 캠퍼스.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곳이다. 월요일 늦은 오후에 이곳 캠퍼스를 찾아 잠시 햇빛 화사한 날씨도 즐기고, 때마침 있었던 French horn 리사이틀도 감상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한 학생의 리사이틀. 피아노와 협주하기도 하고, 다른 관악기들과 협주하기도 한. 거의 매일 이같은 학생들의 리사이틀이 있는 것 같다. 이곳의 학생이 아니라도, 누구나 청중이 되어 감상할 수 있는.
4. MOMA (Museum of Modern Arts)
화요일(4월 11일)엔 뉴욕 현대 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s)을 찾았다.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살 때 시간을 지정하게 되어 있었다. 미리 예약한 대로 12시에 입장해서 거의 5시까지, 이날 반나절을 온전히 이곳에서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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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k Rothko: No. 10,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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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blo Picasso: Girl with a Mandolin (Fanny Tellier),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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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etano Pesce: Up 5 Lounge Chair with Up 6 Ottoman, 1969 Moloch Floor Lamp, 1970-71 |
몇몇 개의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작품들 중에, Georgia O'Keeffe 작품들이 아주 초기작부터 전시되고 있어서 그녀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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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ia O'Keeffe: An Orchid, 1941 |
Guilermo del Toro 감독의 영화 Pinocchio의 제작 과정과 몇몇 세트들도 전시되고 있었는데, 아직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 이 전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남았다.
이날 본 여러 전시 중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끈 작품은 Refik Anadol의 'Unsupervised'. 인공 지능을 이용해, MOMA에 전시된 작품들의 데이타를 해석하고 재구성해서 만든 비디오 작품이다. 그때그때의 새로운 데이타 - 이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공간의 빛, 움직임, 소리, 바로 옆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날씨 등- 가 실시간 통합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비디오를 만들어 내고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계속해서 '용솟음치는' 이미지들과 그 강렬한 색깔들에 매료되어 한참을 그렇게 넋을 잃고 바라보다.
5. Central Park
뉴욕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원은 단연 Central Park이다. 바뀌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시끌벅적한 맨해튼 한 복판에서, 평온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이번 여행 중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6. Broadway play 'A Doll's House'
이번 여행 동안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Broadway 연극을 보는 것. 뮤지컬도 좋지만, 난 연극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행 기간 동안 상연되는 연극 몇몇 개를 체크해 보고, 또 뉴욕 타임즈 평도 찾아본 후에, 'A Doll's House'를 선택했다. 헨릭 입센의 이 연극은 어릴 때 희곡으로도 읽은 적이 있어서 아주 익숙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이번 공연은 minimalism에 기반한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내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Nora 역을 맡은 Jessica Chastain은 몇몇 영화를 통해 내겐 친숙한 배우여서 더욱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인상 깊게 본 'Molly's Game'을 비롯해서).
연극 평에서 읽은 대로, 아무런 장식도 없는 무대에서 배우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의자에 앉거나 선 채로 대화를 나누거나 독백을 하는 형식이었다. 바닥이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대사가 있는 배우들이 관객들 바로 앞에 왔을 때 돌아가던 무대가 멈춰 서는. 소품도 하나 없이 그냥 관객의 상상에 맞기게 되어 있던. 어찌 보면, 다른 아무 것에도 관심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스토리에만 몰입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마지막 장면은 웃음이 나올 만큼 황당하기도 했고.
7. Brooklyn Botanic Garden
4월 13일 목요일 아침엔 Brooklyn Botanic Garden을 찾았다. 이곳과 Bronx Botanical Garden을 놓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곳을 선택했다. 거리도 가깝고 규모도 작아서, 오전에 관람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침 벚꽃이 피고 있어서 모처럼 벚꽃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꽃나무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도 한 구경거리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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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인지 남매인지 모르지만, 서로 열심히 대화 나누는 모습이 보기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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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꽃들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고 예쁘다 |
8. Quad Cinema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있는 몇몇 art house cinema들을 찾는 것이 내겐 큰 즐거움이지만, 특히 뉴욕 대학교 (NYU) 근처에 있는 Quad Cinema는 전에 이곳에 살 때 아주 즐겨 찾던 극장이다. 이번 여행 동안에도 이틀에 걸쳐 두 개의 영화를 이곳에서 보았다. 아일랜드 영화 'The Quiet Girl'과 프랑스 영화 'Everything Went Fine (소피 마르소 주연!)'. 두 영화 모두 좋았는데, 특히 'Everything Went Fine'은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 François Ozon의 작품이라 더욱 좋았다. 마침 이 주 동안 이 극장에서 Ozon 감독의 작품들을 하루에 하나씩 상영하고 있어서 내 여행과 너무도 타이밍이 잘 맞았다.
9. Astoria Park
4월 14일 금요일. 오후에 LaGuardia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있어서 오전에 시간이 조금 있었다. 맨해튼에 갈 시간은 안 되고 해서, 숙소 근처 Astoria Park을 산책하다. 강건너 맨해튼의 모습도 감상하면서, 모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10. Subway, Bus, Uber, & Ferry
이번 여행 동안 subway, bus, Uber, 그리고 ferry까지 다양한 교통 수단을 이용했는데, 특히 ferry는 내게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머물렀던 곳이 맨해튼에서 바로 강건너 있는 곳인데다 ferry 터미널까지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라 편리하기도 했지만, 배를 타고 가면서 보는 맨해튼의 모습, 그리고 터미널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바쁘게 다니다가, 터미널에 와서야 비로소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좋았고. 강건너 보이는 도시의 모습과, 강물 위에 반영되어 흐르는 불빛들을 감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