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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December 29, 2020

2020년을 마무리하며

이제 2020년도 사흘이 채 안 남았다. 올해는 온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충격으로 가득했던 한 해였다. 이곳 LA에선 지난 3월부터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하다가 여름과 초가을을 지나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지는 않았었는데, 11월부터인가 급격하게 확진자 수가 늘기 시작했다. 인구 천만명의 LA County에서만 지난 7일 동안 하루 평균 확진자가 만 4천(14,000)명을 조금 웃돈다고 한다 (오늘 아침 체크한 뉴욕 타임스 데이터에 의하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연초 이탤리에서 병원들에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들이 넘쳐나면서 어떻게 할 줄 몰라하는 의료진들의 지친 모습과 짧은 시기에 속출한 많은 사망자를 처치하지 못해 애를 먹는 모습을 저녁 뉴스를 통해 매일 보던 것.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듯 처참한 모습이 뉴욕에 있는 병원들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을 뉴스에서 보아야 했고. 3월말 이곳 LA에 첫 'stay-at-home' 명령이 내려지면서 그동안 뉴스에서만 보던 '사재기 사태'를 처음으로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수퍼마켓이며 큰 상점들에서 텅텅 빈 선반들을 드물지 않게 보았던. 또한 평소에 차들로 넘쳐나던 거리와 파킹랏들이 음산할 정도로 텅 빈 것도 경험했고. 'Surreal'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던, 처음 경험하는 상황과 모습들. 하지만 그러한 상황과 모습들에 익숙해져가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지난 3월 하순 모든 클래스들이 온라인으로 옮겨지면서 한 주 동안에 급하게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던 것이 정말 'Crazy!'했던 일. 처음 해보는 온라인 수업이라 이런저런 작은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큰 어려움없이 그 과도기를 지난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온라인 수업이 주는 이점들을 많이 즐기게 되었고. 바로 눈 앞에 모든 학생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장 큰 이점은 극심한 교통 체증을 뚫고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아침 수업 전에 동네를 산책한다는 건 이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큰 일상의 즐거움으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가 시작될 때 한껏 희망에 부풀어 세웠던 새해 계획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총체적 위기'의 상황에선 'thriving'이 아니라도, 단지 잘 'surviving'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다. Physically, mentally, 그리고 emotionally, 건강하게, 잘 버텨나가는 것. 그런 점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올해 2020년을 잘 견뎌온 것을 대견해하고 감사해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한다.

Sunday, September 13, 2020

'광화문 연가'를 들으며 향수에 젖다

때로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며 문득 추억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시를 읽거나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고. 오늘 아침 운전하면서 들은 '광화문 연가'(이문세 노래)가 나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했다. 노래 첫가사부터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던.

노래에 나오는 '정동길'과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바로 그 정동길에 있는 중학교와 그 교회당에 다녔던 적도 있어서 내겐 아주 익숙한 길. 수없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던 기억. 특히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소복히 쌓여 아름다웠던.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내 깊은 추억 속에 남아있는 그곳은 지금도 아주 생생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 코로나 사태가 내년 가을쯤이면 진정이 될까.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한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될는지. 내가 다녔던 중학교 교정과 그 조그만 교회당도 찾아보고, 노랗게 은행잎으로 덮인 덕수궁 돌담길도 걸어보고 싶은데.

한껏 향수에 젖게 하는 일요일 아침이다.

Wednesday, August 19, 2020

래슨 화산 국립 공원 (Lassen Volcanic National Park) 여행

항상 새해를 맞을 때마다 그 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하곤 한다. 올 초에도 어김없이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를 만들었었다. 그 중의 하나는 많은 곳들을 여행하자는 것. 봄방학과 여름방학을 이용해 국내뿐 아니라 외국도 여행하자 계획했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심각해진, 이곳 캘리포니아에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연초에 세운 여행 계획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번 달 초부터 시작된 여름방학이 가까워 오면서,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차로 여행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유타주에서 하루 동안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들을 물색하다가 래슨 화산 국립 공원(Lassen Volcanic National Park)을 목적지로 결정했다. 이곳은 LA에서 6백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 새크라맨토에서도 북쪽으로 세 시간을 더 가야하는 곳이니 하루에 운전해서 갈만한 곳중에서 가장 먼 곳 중 하나라고 하겠다.

8월 4일 화요일 아침. 8시 반이 조금 넘어 집을 출발했다. 지난 연말 Morro Bay를 여행한 후 일곱달만에 처음으로 하는 여행이라 더욱 더 맘이 설렜다. 가는 길 중간에 rest area에 잠시 멈춰서 준비해 간 점심을 먹은 것과, 주유를 하기 위해 주유소에 들른 것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차를 달렸다. 프리웨이 405와 5를 타고 달리면서 길 양옆으로 펼쳐진 구릉들과 들판들을 맘껏 감상하다. 지난 봄에 이곳을 온통 뒤덮었을 예쁜 봄꽃들을 상상하기도 하고. 군데군데 녹색의 관목들이 무리져있는 것을 볼 수도 있었지만, 이젠 거의가 마른 잡초들로 노랗게 뒤덮여 있는 모습. 캘리포니아 중부를 지나면서는 한창 익고 있는 농작물들 - 포도밭과 옥수수밭,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과일 나무들을 보았다. 아주 많은 소들이 떼로 몰려있는 가축 농장을 지나기도 하고, 몇몇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언덕들도 지났다.

저녁 때가 가까워 Red Bluff이라는 타운에 도착. 우리가 이미 예약해 놓은 숙소가 있는 Hat Creek까진 한시간 반 정도의 거리.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다운타운'으로 보이는 곳에 가니 중국 식당과 멕시칸 식당, 그리고 피자 집이 보였다. 이 중 중국 식당에서 음식을 픽업해 근처 공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후 다시 차를 달려 해가 거의 질 무렵 숙소에 도착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안전을 위해 많은 것들에 신경을 썼지만, 특히 숙소를 결정하는데 신경을 썼다. 다른 사람과 공간을 share하지 않고,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청결과 위생에 철처한 곳을 원했는데, Airbnb를 통해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었다. Lassen 국립 공원에서 북쪽으로 20분 정도 운전해 가면 닿을 수 있어 교통도 괜찮았고.)

다음날인 8월 5일, 수요일. 이날은 이 국립 공원의 북서쪽 입구에서 시작해 공원을 관통해 달리는 89번 국도를 타고 남서쪽 입구까지 왕복 여행을 했다. 이 하이웨이 주변엔 많은 '가볼만한 곳'들이 있어서 대부분의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둘러보다.

(래슨 화산 국립공원은 활화산 지대다. 1914년 시작된 Lassen Peak 화산 폭발은 그 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크고 작은 화산 폭발들로 이어졌다고 한다.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공원 안의 몇몇 곳에 가면 - Bumpass Hell, Sulphur Works, Devil's Kitchen 등 - 아직도 유황가스들이 격렬하게 솟아나오고, 흙탕물 웅덩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들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소개할 Cinder Cone도 이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또 다른 화산 폭발들로 생긴 곳이다.)

제일 먼저 차를 세운 곳은 Manzanita Lake. 공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곳이다. Information Center가 있는 파킹랏을 지나 호수 바로 옆 캠프장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 동안 캠핑은 하지 않지만, 혹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캠핑을 할 수도 있어 체크해 보기 위해서다.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캠프장. 캠프장으로서의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고 각 캠프 사잇도 널찍해 보였다. 캠프장 입구엔 조그마한 가게도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선 기념품과, 간단한 스넥, 음료수, 그리고 이곳에 묵는 동안 필요할 수 있는 생필품들을 팔고 있었다. 가게 한쪽엔 조그만 부엌이 있어서 간단한 아침 식사와 점심 샌드위치도 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이곳에서 veggie wrap을 사서 가게 바로 바깥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꽤 괜찮았다. 이곳에선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

가게 앞 파킹랏에 차를 세우고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호수 주변을 한바퀴 도는데는 2마일이 조금 안되는 거리. 호수에 비친 나무들과 산, 그리고 구름의 모습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웹사잇으로 보았던 그 '환상적인' 이미지를 바로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산책하면서 몇몇 사람들과 지나쳤지만, 그리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Manzanita Lake






호수를 나와서 계속 차를 달렸다. 가는 길에 Chaos Crags and Chaos Jumbles, Hot Rock, Devastated Area, Summit Lake 등을 둘러 보았다. Kings Creek Picnic Area에는 그늘진 피크닉 테이블들이 여럿 있어서 잠시 더위를 식히며 쉬어가기에 좋았다. 가는 길에 몇몇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한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곰 한마리가 차도 근처 언덕에서 차도와 평행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 후에 보니 바로 옆에 아기곰도 따라가고 있었고.


Lassen Peak의 모습


공원 안에서 89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곰을 보았다.
차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Lassen Peak 파킹랏에도 들러 이 산 정상까지 오르는 하이킹 트레일도 잠깐 올려다 보고,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Bumpass Hell 파킹랏에도 잠시 들렀다. (Lassen Peak과 Bumpass Hell은 다른 날에 다시 와서 하이킹을 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Lassen Peak 파킹랏을 바로 지나면서 내려다 본 Lake Helen은 그 물색깔이 너무 아름다워서 - 짙고 깊으면서 맑은 푸른색 - 이번 여행 중에 본 많은 호수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다. 


Lake Helen

호수 물이 너무도 맑았다



Lake Helen에서 본 Lassen Peak



Sulphur Works에서는 군데군데 흙탕물이 보글보글 끓어 오르고 있는 mud pot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끓어오르는 힘이 너무 강렬해서, 어떤 생물도 그곳에 빠지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Sulphur Works


격렬하게 끓어 오르고 있는 mud pot



곧 이어 이 공원의 남서쪽 입구에 있는 Kohm Yah-mah-nee Visitor Center에 도착. 하지만 그때가 문을 닫는 시간이어서 밖에서만 잠시 돌아 보았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돌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왔다.

8월 6일, 목요일.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된 Cinder Cone을 하이킹하는 날이다. 이곳도 화산 폭발로 형성된 곳인데, 위키피디어에 의하면 1650년대 있었던 두 번의 폭발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750 피트가 되는 이 원뿔 모양의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분화구가 있는데, 그 안에 걸어내려가 분화구 바닥까지 갈 수가 있다.

Cinder Cone 하이킹 트레일 시작점은 공원 북동쪽 입구를 통해 가야 한다. Butte Lake 바로 옆 파킹랏에 차를 세우고 하이킹을 시작. 처음 1.3 마일 정도는 높낮이가 거의 없이 평탄한 길을 하이킹했다. 가는 길 한쪽으로 용암 무더기들이 벽처럼 높게 쌓여 있는 것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하이킹 트레일에 나무들도 적지 않게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늘을 찾아가며 하이킹할 수 있었다.

Cinder Cone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 드디어 도착. 우선은 아름다운 시와 어울릴듯한 아주 서정적인 언덕의 모습에 감탄했다. 서 너 그루의 작은 나무들과 어울린 그 언덕의 모습은 마치 꿈 속에서 보는 것처럼 몽환적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걸어올라가 그 언덕의 한 옆으로 난,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바로 아래에 이르렀을 때... '저길 올라간다구?!?'하는 놀라움의 외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밑에서 보기에 아주 가팔라보이는 등산로. 게다가 화산재로 된 등산로라서 바닥이 모래를 밟는 것처럼 미끄러져 내릴 텐데...!

어쨌든, 일단 등산을 시작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하이킹 폴(pole)을 차에 두고 오려다, 혹 짐만 될까봐, 결국 가지고 온 것이 너무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올라갈 때도 그랬지만, 내려올 때 많이 도움이 되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여러 번을 멈춰서서 잠시 숨을 골라야 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


Cinder Cone





드디어 정상에 올라 360도를 둘러 내려다 보이는 주변의 모습들을 경이로움으로 감상했다. Painted Dunes의 모습과 멀리 보이는 호수들. 그리고 Lassen Peak의 모습도! 하지만 가장 내 관심을 끈 것은 고깔을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은 분화구의 모습. 분화구 바깥쪽과 그보다 조금 안쪽으로 두개의 rim trail이 나 있었다. 그 트레일들을 따라 걸은 후에, 분화구 안으로 난 가파른 트레일을 따라 내려갔다. 위에서 볼 때 보다 한참을 걸어내려가 분화구 바닥에 도착.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들이 아주 작은 점으로 보였다. 밑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많이 깊었고. 


Cinder Cone 정상에서 본 Lassen Peak




Cinder Cone 정상에서 본 Painted Dunes

Cinder Cone 정상에 있는 분화구


분화구 안으로 걸어내려가다


분화구 안 바닥에 도착!
위에서 보던 것보다 많이 더 깊었다

분화구 바닥에서 올려다 보다 -
Rim Trail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조그만 점으로 보인다





분화구에서 나와 Cinder Cone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예상대로 가팔랐다. 하이킹 폴을 이용해 속도를 조절해 가며 조심스럽게 언덕을 내려와 차를 세워둔 곳까지 오니 다리가 뻐근하게 느껴졌고. 잠시 차안에 앉아 다리를 높게 올리고 휴식을 취한 뒤, 파킹랏 바로 옆에 있는 Butte Lake 주변 한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준비해 온 샌드위치와 스넥, 과일들로 점심을 먹고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Butte Lake






날씨가 무척 더웠던 이날 오후엔 공원 바로 바깥에 있는 Subway Cave를 보러 갔다. 용암굴인 이곳은 별로 인공적인 터치를 하지 않은 짧고 소박한 동굴이었다. 바깥의 더운 날씨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동굴안은 긴팔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서늘했다. 빛이 전혀 들지 않아 손전등을 끄면 아주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동굴 안이 넓어서 별 어려움 없이 걸어다닐 수 있었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조심을 해야 했다.


Subway Cave





8월 7일, 금요일. 아침에 바로 Bumpass Hell을 향해 차를 달렸다. 여행 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곳은 이곳 국립 공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라 아침 10시가 넘으면 주차장에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공원의 북서쪽 입구를 지나 이틀 전에 지났던 구불구불한 89번 국도를 한동안 달려 거의 남서쪽 공원 입구 근처에 있는 이곳 하이킹 시작점에 도착했다. 소문대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파킹도 두, 세 자리를 빼고 모두 차 있었다.

이곳 Bumpass Hell은 래슨 국립 공원에서 가장 넓은 열수 지역(hydrothermal area)이라고 한다. 파킹랏에서 1.5마일 정도 되는 하이킹 트레일을 따라 가면 여기저기에서 뜨거운 김이 계속해 뿜어져 나오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조그만 시내들도 있는 Bumpass Hell에 이르게 된다.  이곳의 이름은 1860년대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던 개척자 Kendall Vanhook Bumpass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는데, 그는 당시 한 방문객에게 이곳을 안내해 주던 중 발을 잘못 딛어 끓고 있는 진흙탕(mud pot)에 발이 빠져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Bumpass Hell에 이르는 하이킹 트레일 한쪽 옆으로 펼쳐지는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어떤 곳은 멀리 보이는 산들의 능선들이 겹겹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곳은 눈아래로 평원과 그 가장자리에 둘러선 키 큰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기도 했다. 트레일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계속해서 마스크를 쓰고 가야 했다.

Bumpass Hell로 가는 파킹랏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돌 






드디어 Bumpass Hell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 오르는 모습. 가까이 가보니, 안전을 위해 보드웍(boardwalk)을 설치해 놓고 그 위로만 걷도록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위험을 경고하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고. 잘못 발을 딛었다가는 뜨거운 물에 빠져 발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까.


Bumpass Hell













이곳 Bumpass Hell은 'Wow!'하는 탄성을 지를만큼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내겐 오히려 Sulphur Works에서 보았던 mud pot - 바로 내 눈앞에서 진흙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 이 더욱 인상깊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르는 하이킹 트레일에서 바라본 풍경은 참 아름다워서 족히 한번 와 볼만한 곳이라 생각된다.

하이킹 후에 곧바로 Kings Creek Picnic Area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바로 옆 피크닉 테이블엔 젊은 부부와 두 꼬마 아이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 둘 중에 더 어린 아이 (두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우리를 보자 'Hola!'하고 말을 건넸다. 우리도 'Hola!'하며 응답했고. 그 부부와 얘기를 잠시 나눠보니 스페인에서 5년 전에 미국으로 이사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단다.

이날 오후엔 근처에 있는 Kings Creek Falls를 하이킹했다. 왕복 3마일 거리에 500피트 정도를 오르내려야 하니 하이킹하기엔 그리 어렵지 않은 곳. 폭포에 거의 다 가서 잠시 짧은 구간 동안 일방 통행만이 허용되는 곳이 있었다. 폭포에서 돌아오는 방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폭포로 가는 길은 좀 더 거리는 길지만 완만한 트레일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 둘 작은 폭포들이 보이기 시작하다가 드디어 전망대가 있는 폭포에 다다랐다. 그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폭포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모습은 아니라서 '실망이다...' 생각하며 다시 돌아오는 길에 오르다. 얼마 가지 않아 조금 전에 언급한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짧지만 많이 가파른 길로 일방 통행만이 허용되는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오는 길에 왔던 길지만 좀더 완만한 길. 오던 길과 다른 짧고 가파른 길을 선택했는데, 곧 이 결정이 얼마나 잘 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가파르게 오르는 이 길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가는 길에 크고 작은 폭포들을 볼 수 있었다. '장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더러 탄성을 지를 만큼 멋진 폭포들도 보았다.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냐며 폭포들의 모습을 맘껏 즐기다.




Kings Creek 폭포 -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


폭포 전망대에서 돌아가는 길에
계곡을 따라 난 가파른 등산로를 걸으면서
크고 작은 폭포들을 여럿 보았다 


하이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 입구 바로 전에 Reflection Lake에 잠시 들렀다. 이곳은 Manzanita Lake과 국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Manzanita Lake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 크기도 훨씬 작아서 호수 주변을 한바퀴 도는데 10분 남짓 걸릴 정도다. 하지만 그 이름이 말하는 것처럼, 호수 위에 비친 나무들과 산의 모습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Manzanita Lake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멋진 모습들에 감탄하다.


Reflection Lake





8월 8일 토요일. 이날은 공원의 남동쪽 입구 쪽에 위치한 Devil's kitchen을 찾았다. 우리 숙소가 공원 북쪽이라, 이 지역에 가기 위해  한시간 반을 운전해 가야 했다. 공원 바로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 Chester에서 잠시 그로서리 샤핑을 했는데,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편리한 '수퍼' 마켓이 있어서 반가웠다.

Chester를 떠나 Warner Valley에 위치한 Devil's kitchen으로 가는 길. 뜨문뜨문이지만 집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놀랐다. 이렇게 외진 숲속에 사는 건 어떤 것일까...  얼마를 가니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많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드디어 Devil's Kitchen으로 가는 트레일 헤드에 도착. 그리 크지 않은 파킹랏엔 차들이 거의 꽉 차 있었고. 목적지까지는 왕복 4.2마일. 가는 길에 목초지(meadow)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경사가 완만한 언덕 길을 걷기도 했다. 언덕길엔 나무들이 드물지 않게 있어서 그늘 아래로 걸을 수 있어 좋았고. 가는 길에 사슴 한마리를 보았는데, 우리가 가까이 가도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마치 강아지처럼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었고. 만삭에 가까운 듯 배가 꽤 불러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목초지를 건너면서 곰도 한마리 보았다. 하이킹 트레일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던. 그 곰을 보느라 몇몇 사람들이 떼를 지어 멈춰서 있었고.)


Devil's Kitchen으로 가는 길에 본 사슴 -
우리를 보고(?) 강아지처럼 계속 꼬리를 흔들어댔다




목초지를 가로질러 Devil's Kitchen으로 가는 길


Devil's Kitchen에 드디어 도착. 이곳도 Bumpass Hell처럼 열수 지역(hydrothermal area)이라 가까이 가자 유황 냄새(계란이 탈 때 나는 냄새같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곳저곳에서 김이 오르고 있는 것도 보였고, 우윳빛의 온천(hot springs)도 볼 수 있었다. 위험하니 트레일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는 경고 사인들도 눈에 띄었다.


Devil's Kitchen





Devil's Kitchen 하이킹을 마치고 공원을 나와 Juniper Lake으로 향하다. 이 호수도 공원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곳에 온 길에 보고가기로 한 것. 호수에 가기 위해선 6마일 가까이 비포장 도로를 운전해가야 했는데, 이 길은 Devil's Kitchen으로 가는 비포장 도로보다 더욱 많이 거칠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갈까를 심각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그래도 계속 차를 달려 호수에 도착. 호숫가에 서서 호수를 마주하니, 그동안 이 공원에서 보았던 다른 호수들보다 훨씬 커서 시야가 탁 트였다. 물도 아주 맑아서, 결국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호수 주변에 캠프장이 있어서 몇몇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지만, 아주 한적하고 조용했다.


Juniper Lake


8월 9일, 일요일. 이 날은 Mount Lassen 정상까지 하이킹을 계획한 날이다. 이 산 정상의 고도는 10,500 피트 가까이 된다. (한라산은 6,388 피트, 백두산은 9,003 피트라고 한다.) 과거의 경험을 돌아볼 때, 고산증(Altitude Sickness)에 쉽게 시달리는 내가 고산증을 느끼기에 충분한 고도다. 이틀 전 Bumpass Hell (고도 8천 피트)에 하이킹하면서도 경미한 고산증 증세를 경험했었던 터라 이날의 등산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 판단. 결국 Aaron만 혼자 등산하기로 하고, 그동안 나는 공원 입구의 Manzanita Lake에서 시간을 보냈다. 호수 주변도 산책하고, 근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Manzanita Lake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하이킹을 갔던 Aaron이 돌아왔다. 하이킹이 어땠냐고 물어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단다. 마지막에 첫번째 peak에서 두번째 peak으로 오르는 곳이 많이 가팔랐다고.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며 함께 등산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다.


8월 10일, 월요일. 그동안 일주일 가까이 시간을 보낸 이곳 Lassen 국립 공원을 떠나는 날. 일주일 전 이곳에 올 때는 프리웨이 5를 하루 종일 달려 왔지만, 가는 길엔 Mammoth Lakes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게획을 세웠었다. Mammoth로 향하는 국도 395는 프리웨이 5에 비해 주변 풍경이 훨씬 아름다워서 아주 잘한 결정이라 생각. 가는 길에 Reno (Nevada)를 비롯해 몇몇 도시들을 지났다. 잠깐이지만 쏟아지는 빗속을 운전하기도 했고.

오후에 Mammoth 숙소에 도착.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Twin Lakes로 향했다. 지난 2017년 6월 이곳을 여행했었는데, 6월임에도 날씨가 추워서 길에 얼음이 언 관계로 길이 막혀 갈 수 없었던 곳이다 (나중엔 눈도 내렸다).

호수에 도착해 우선 전망대를 찾았다. 2017년에 이곳에 왔을 때, 겨울 외투를 입었음에도 너무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서 사진만 한, 두장 찍고 도망치듯 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처럼 바람이 무척 세게 불었다. 날씨도 선선했고.

호수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호수 주변을 따라 잠시 산책을 하다.



Twin Lakes






Twin Lakes를 나와 근처 Village를 찾았다.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이곳 Mammoth는 여름인 지금도,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조심스러운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듯했다. 레스토랑 바깥마다 마련된 테이블엔 거의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한동안 보기 드물었던 풍경.  


Mammoth 스키 리조트 Village


8월 11일, 화요일 아침. 숙소를 나와 집에 오는 길에 Convict Lake에 잠시 들르다. 지난 2017년 여행 중 가장 내 맘을 사로잡았던 곳. 그 때는 안개가 많이 끼고 날씨가 아주 추워서 잠깐만 호수 주변을 산책했었다. 그 때 보았던 안개낀 호수의 모습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을 만큼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날 아침 다시 찾은 이 호수는 그 때와는 다른 느낌. 햇빛이 벌써 따갑게 느껴졌고, 많은 사람들이 호수 주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3년전 만큼 나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첫번째 보았을 때의 그 강한 인상이 다소 퇴색되는 느낌. (다시 찾지 말 걸 그랬나...?)


Convict Lake


Convict Lake을 나서서 국도 395를 타고 오면서 눈 앞에, 그리고 양옆으로 펼쳐지는 경치들을 즐겼다. Lone Pine을 지나오면서는 멀리 보이는 Mt. Whitney의 모습도 찾아보고 (Alaska와 Hawaii를 제외한 미국 48개 주 중에서 가장 높은 산. 고도 14,505 ft). 


집으로 오는 길 -
국도 395를 타고 탁 트인 광야를 달리다

길 옆으로 보이는 산들

Mt Whitney 근처 Visitor Center 앞에서 -
사진 가운데 구름에 덮인 산이 Mt Whitney.
Alaska와 Hawaii를 제외한 미국 48개 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지내다가 '드디어' 감행했던 이번 여행. 여러가지 면에서 조심을 많이 했던 여행이었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행에의 욕구가 조금은 만족될 수 있었고. 광활하기도 하고, 찬란하기도 하고, 오묘하기도 한 자연의 모습을 맘껏 즐길 수 있었던 여행. 쉽지 않게 결정한 여행이라 더욱 더 값지고 의미있게 여겨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