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d Post

Friday, July 8, 2016

"누가 먼저 시작했니?"

다섯 형제의 막내로 자란 내게 두 살 위의 오빠가 있다. 어릴 땐 친구처럼 함께 놀며 지냈는데, 그런 중에 토닥토닥 싸우기도 많이 했다. 싸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다른 방에 계시던 엄마께서 '엄마 (너희들 혼내주러) 지금 간다!'라고 먼저 경고를 하시고, 그래도 싸움 소리가 멈추지 않으면 드디어 모습을 나타내셔서 잘잘못을 가려주시고 싸움을 말리시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께서 빠뜨리지 않고 물으시던 것이 '누가 먼저 시작했니?'하는 질문. 먼저 시작한 사람의 잘못을 물으시던 것.

"누가 먼저 시작했니?" --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나 갈등이 생길 때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문제의 발단이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할 경우가 많다는 것. 문제의 발단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 - 즉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네가 먼저 나를 존중해주지 않으니까 나도 너를 존중하지 않게 됐지", "네가 먼저 이기적으로 나오니까 나도 내 이득을 생각하게 됐지", "네가 먼저 나를 멀리하니까 나도 너를 멀리하게 됐지", 등등. 잘못은 먼저 시작한 상대방에게 있고, '희생자'인 나의 대응은 그래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은 단지 두 개인의 관계뿐 아니라, 그룹과 그룹간의 관계나 회사간의 관계, 나라사이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쪽에 잘못이 있고, 그에 대응한 내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

그런데 많은 인간 관계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니?'를 따지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얼핏보면 상대방의 잘못으로 시작한 것 같은 경우도 더욱 깊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인의 제공은 나인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내가 그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방의 행동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항상 그날그날 새롭게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 그동안의 쌓여온 오랜 history가 오늘 겪고 있는 관계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때로는 발단이 된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에도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별 뜻없이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겐 커다란 바위가 되어 가슴을 무겁게 누르기 시작해도 (혹은 흔히 사용하는 비유처럼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러도) 나는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행동이 그 바위나 비수의 상처에서 나온 '반작용(reaction)'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에게 상대방이 먼저 싸움을 시작한다고 여기게 된다.

"누가 먼저 시작했니?" -- 그래서 이 질문은 그 대답을 찾기가 간단하거나 쉽지도 않고, 때로는 그 대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사실(fact)을 놓고도 그것을 해석하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고, 그에 앞서 무엇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나와 상대방이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Thinking, Fast and Slow'(Daniel Kahneman저)에서 저자가 많은 예를 들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지각이나 인식(perception)이란 것이 얼마나 왜곡되고(distorted), 편향되고(biased), 많은 착각(illusion)에 영향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이같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 자체에 회의를 갖게도 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서로의 행동에 대한 인식을 대화를 통해 나눠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과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이렇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하고, 또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내 인식이 앞서 말한 왜곡, 편향, 착각에 근거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결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