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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20, 2015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올해 읽은 책 중에 'Babel No More'라는 책이 있다. Michael Erard가 쓴 이 책은 그 부제 'The search for the world's most extraordinary language learners'가 말하듯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하기로 알려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그의 책 전반부에 소개된 Giuseppe Mezzofanti라는 이탤리 사람은 적어도 30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1,700년대 말부터 1,800년대에 살았던 그에 관한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그러한 구전 사실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 과연 그가 그 각각의 언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구사했는지에 관한 그의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세계 각곳에서 polyglot (수개 국어를 쓰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 과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 방식을 배운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처럼 내가 처음 접한 외국어는 영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 대학 1학년 때까지 영어 클래스를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영어를 공부했지만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그 언어에 반영되어 있는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신나고 흥미로운 것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신남'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은 미국에 온 첫 해 잠시 adult school에 다니면서다. 오하이오에 공부하러 떠나기 전 몇 달간 집근처의 학교에서 영어 회화 수업을 들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한 여자 선생님의 클래스. 조르단, 멕시코를 비롯한 몇몇 다른 나라에서 온 대, 여섯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작은 클래스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 간에 공통된 언어는 오직 영어뿐. 아직 서툰 영어지만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열심히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제 2 외국어로 공부한 불어를 배울 때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한국서 고등학교 1학년때와 대학 1학년때 총 2년 동안 불어를 공부했는데, 불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곧 이 언어에 대한 관심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재미있게 불어를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관심은 대학 졸업 후에도 경복궁 맞은 편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에 이민온 후 오하이오에서 공부하면서도 프랑스 영화를 열심히 보았던 기억도 있고, 그 후 뉴욕에 살았을 때는 직장 근처에 있던 Alliance Française의 회원으로 가입해 일주에 한번씩 상영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다. 켈리포니아에 돌아와서는 인터넷 동호인 그룹인 'meetup.com'의 불어 그룹에 가입하면서 또 다시 불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몇 년 전에는 집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불어 수업을 듣기도 했다.  

제 3 외국어인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일본에 2주간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다. 그래서 그 해 가을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기초 일본어 수업을 들었는데, 일본인 여자 선생님이 차근차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 후 기초 회화 클래스를 듣기도 하고, 일본어 meetup 그룹을 조직해서 한동안 일본어를 연습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제 4 외국어인 스페인어는 정말 오랫동안 배우고 싶어하던 언어. LA에 살면서 생활 전반에서 아주 쉽게, 자주 접하게 되는 언어다. 맘만 먹으면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위에 얼마든지 있고. 이런 기회를 외면하고 산다는 걸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지난 해 여름 학기 동안 커뮤니티 칼리지의 단기 스페인어 클래스에 수강 신청을 했다. 보통 16주에 끝내는 과정을 8주 동안에 커버하는 클래스였다. 그만큼 매일매일 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았고. 그래서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아주 재미있게 8주간의 수업을 마쳤고. 운전하면서 보는 대형 사인이나 길 이름, 지역 이름, 음식 이름 등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도 좋았고, 흔히 듣게 되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아는 단어와 표현들을 접하게 될 때 많이 반갑기도 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외국어를 빨리 매스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얼마나 동기 부여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 그 언어가 더욱 큰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더욱 빨리 그 언어를 배우려는 동기가 강해진다고 하겠다. 내 경우를 보면,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이해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바램에서 더욱 열심히 공통의 언어인 영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특히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과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에서 영어 공부에 전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불어의 경우에는, 프랑스 문화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학 졸업 후에도 꾸준히 이 언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더 큰 욕구'라는 것이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의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 언어가 '사용중'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동기 부여와 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 사는 것이, 특히 다양한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이곳 LA에 사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데 큰 장점을 갖는다고 하겠다. 불어가 되었든, 일어가 되었든, 스페인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 어렵지 않게 native speaker들을 찾을 수 있고 그들과 살아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큰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특히 그들과 '실전'에서 부딪쳐가며 끊임없는 실수와 '쪽팔림'('embarrassment'를 한국말로 옮기는데 이보다 더 생생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을 경험하면서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려는 동기 부여를 얻을 수 있다. 무슨 언어든 그 언어를 빨리 매스터하기 위해선 가능한 한 많이 그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대개의 경우 그런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려 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런 반응임을 생각하면, 외국어를 매스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른 해에 비해서 올해는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많이 게을렀던 해였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외국어를 늘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많이 실천을 못했던 것 같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 항상 빼놓치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자는 것인데, 굳이 내년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것 없이 오늘부터라도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할애해서 매일매일 외국어를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자 생각한다. 그렇게 공부한 것들을 실제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기회도 갖고. 내 일생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언어들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싶은 꿈. 그 꿈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할 때는 바로 오늘.   

Monday, November 9, 2015

Potato Chip Rock hike

하이킹을 좋아하면서도 한동안 하이킹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날씨가 더웠던 탓도 있고, 이런저런 계획들 속에 묻혀 top priority로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에 모처럼 기억에 남는 하이킹을 했다. 샌디에고 카운티 Poway에 있는 Potato Chip Rock을 하이킹한 것.

그 전날인 금요일 오후 Carlsbad에 가서 하루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25마일 떨어진 Lake Poway로 향하다. 호수 바로 옆 파킹랏에 도착해 호수를 끼고 하이킹을 시작. 탁 트인 호수의 모습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감자칩처럼 생긴 얇다란 바위의 모습으로 잘 알려진 이곳 Potato Chip Rock에 가기 위해 Mt. Woodson trail을 따라 약 4마일 가까이 되는 길을 꾸준히 걸어 올라갔다. 2,000 피트 넘는 높이를 올라가야 하니까 쉽지는 않은 하이킹. 가는 길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산을 가득하게 덮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동물 모양을 비롯해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어서 오르는 길에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높이를 더해 가면서 산을 둘러싼 주변의 경치에 여러 번 탄성을 터뜨리다. 특히 정상에 거의 올라갔을 때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멕시코의 몇몇 작은 섬들의 모습이 아주 환상적이었다.


산을 오르는 길에 여러가지 모양의 바위들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멕시코의 작은 섬들이 보인다




드디어 그 유명한 Potato Chip Rock이 보이는 곳에 이르다.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바위에 도착해보니 멀리서 보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기다려서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했다가 줄이 줄어드는 속도를 재어 보니 한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냥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다.

하도 얇아서 언제라도 부러질 듯이 내민 조각난 바위 위에 때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올라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갖가지 요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고. 주변에서 바위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재미있는 포즈들.






포테이토 칩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30분 가까이 이곳 바위 주변을 돌며 멀리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즐기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산을 내려왔다. 총 8마일 가까이 되는 거리로, 하이킹을 거의 다 마칠 즈음엔 다리가 뻐근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좋은 통증. 11월임에도 아직 덥게 느껴지는 날씨였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군데군데 날려져있는 구름의 모습도 '예술적'이었고. 아주 만족스러운 하이킹이었다.  


Wednesday, September 30, 2015

Billy Joel concert in San Francisco, 그리고 다시 찾은 Paso

지난 Labor Day 연휴 동안 센프란시스코 AT&T Park에서 열린 Billy Joel 컨서트를 보러 갔다. 토요일인 9월 5일 저녁 컨서트. 그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즉흥적으로 계획을 세워 다음날 아침 센프란시스코를 향해 차를 달렸다.

5번 freeway를 따라 차를 달리며 길 양옆으로 낮은 구릉들의 모습을 즐기다. 더러 푸른 관목들과 작은 나무들도 볼 수 있었지만, 대개는 금빛의 마른 잔디들로 덮여 있어 멀리서 보기에 마구 뒹굴어내려도 아프지 않을 듯한 부드러움을 느끼게 했다.

오후 늦게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곧바로 컨서트가 열리는 AT&T Park으로 향하다. Bay Bridge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4만명 가량을 수용하는 야구 경기장. 무대 뒤로 보이는 바닷물에 흐르듯 반사되는 조명의 모습이 한층 밤의 정취를 더해 주었다.


Bay Bridge

AT&T Park 바로 옆 bay에 떠 있는 보트들 


컨서트가 시작되기 전 AT&T Park.
무대 뒤로 bay의 모습이 보인다.  


8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Gavin Degraw의 opening show가 끝나고 드디어 Billy Joel이 무대에 나타나 첫번째 노래 'Big Shot'을 불렀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모습.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모습에서, 흔히 말하듯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끼게 하다. 그 역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있는 듯, 자신은 Billy Joel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란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관객들이 셀폰의 플래시 라잇을 흔들며
무대 위 가수에게 호응을 보내고 있다
- opening show 중에서
                                             

노래 중간중간에 짤막한 메시지들을 섞어가며 세 시간 가까이 쉼 없이 진행된 그의 컨서트. 커다란 공연장을 가득 채운 '대중'을 향한 짤막한 대화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주 'personal'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날 그가 부른 노래 중엔 'My Life', 'Zanzibar', 'An Innocent Man', 'She's Always a Woman' 등 내 귀에 익숙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내겐 생소한 노래들도 드물지 않았다. 이날 내가 가장 즐겼던 노래는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Piano Man'.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던.



Billy Joel의 대표곡 'Piano Man'




11시가 넘도록 계속된 그의 컨서트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공연장을 나서서 bay 주변을 따라 차를 파킹한 곳까지 걸었다. 눈앞에 보이는 Bay Bridge의 모습도 감상하며. 한국처럼 'night life'가 흔치 않은 이곳 미국에 살면서 오랜만에 느껴본 색다른 '신남'.


한밤중의 Bay Bridge


다음 날은 아침 식사 후에 Stanford University 캠퍼스를 찾았다. 아주 오래 전에 찾은 적이 있었던 이곳. 한겨울이었던 그 때는 비 내린 후 흐린 날씨 속에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었는데. 바깥으로 난 건물 기둥들 사이로 아치가 나 있는 모습이 수도원을 떠올리게도 하던 기억.

하지만 이날 다시 찾은 캠퍼스는 한 여름의 햇빛과 더운 날씨 속에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기억했던 것보다 모던한 모습.


Stanford University
- Hoover Tower에서 내려다본 캠퍼스

Stanford Memorial Church





학교 캠퍼스에서 간단히 피크닉을 하고, 101번 freeway에 올라 Paso Robles로 향하다. 포도원과 winery들로 유명한 이곳은 지난 연말연시를 보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 한겨울의 포도원 사이로 차를 달리며 나중에 포도가 익을 때쯤 꼭 다시 한번 찾아야지 생각했던 곳.

Paso에 도착해 다운타운을 찾아 저녁 시간을 보내다. 지난 연말,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보러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나왔던 곳. 아기자기한 모습의 레스토랑들과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연휴임에도 생각보다 붐비지 않아 다소 놀라기도 했고.

다음 날 아침 Wild Horse Vineyards & Winery를 찾았다. 이곳의 포도원엔 이제 수확을 앞두고 여기저기 탐스럽게 포도가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확을 앞둔 포도송이들
- Wild Horse Vineyards에서




Paso를 떠나 이곳서 멀지 않은 Avila beach에 잠깐 들렀다. Pier 위를 걸으며 surfer들의 모습도 즐기고, 바로 beach 옆에 있는 한 아이스크림집에서 특이한 향의 아이스크림 - merlot raspberry truffle - 도 즐기다. 와인향이 독특했던 아이스크림.


Avila Beach








Avila Beach를 떠나 집으로 오는 길에 잠시 Santa Barbara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LA로 돌아오는 길은 연휴의 끝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교통이 혼잡하지 않았고.

Billy Joel 컨서트를 계기로 즉흥적으로 이뤄진 사흘간의 여행. 오고 가는 길에 보았던 황금빛의 구릉과 군데군데 모여 있는 녹색나무들의 모습이 퍽이나 시적으로 느껴졌던. 익어가는 포도들로 가득한 포도원의 모습과 잠깐 들렀던 비치에서 본 푸른 바다의 모습도. 이제 Billy Joel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커다란 화면을 통해서 본 그의 노래하는 모습들과 함께 이번 여행에서 본 이들 이미지들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Wednesday, August 19, 2015

언어 장벽 극복하기 (3) - My Story

미국에서 3, 4년이나 그 이상 살았다고 하면 영어를 웬만큼 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서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저절로 영어가 느는 것이 아님을 안다. 특히 내가 사는 이곳 Los Angeles의 경우는 한국 커뮤니티가 아주 잘 발달해서 영어를 못해도 일상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다. 그것이 한편으론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영어를 향상시키려는 동기 부여가 줄어든다는 면에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어라는 언어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불편을 줄인다'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라는 적극적 이유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이민왔을 때 내 영어 실력은 '한국 사람'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마칠 동안 한번도 미국을 비롯한 외국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학 때 영어 회화 써클에 나가기도 했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해 치른 TOEFL 점수도 괜찮아서 나름 자신만만하게 미국에 도착했다. 같은 해 오하이오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 가족들이 사는 캘리포니아에 머물면서 집 근처 adult school에서 영어 회화 실력을 늘리려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

그 해 가을 박사 과정의 첫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의 '길고 험난한' 영어와의 struggle이 시작되었다. 내가 첫번째로 느낀 언어 장벽은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하는 얘기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인 의미는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를 다 이해하는데는 힘이 들었다. 많은 외국 학생들이 하듯 수업 내용을 녹음해 나중에 다시 들어보기도 했지만 이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곧 깨달았다. 우선은 다시 듣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처음 알아듣기 힘든 내용은 다시 들어도 마찬가지로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졌던 또 다른 경우는 세미나로 진행되는 수업시간에서였다. 교수의 강의가 전혀 없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토론으로 전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갔어도 당장 토론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고가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토론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언급된 내용을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되풀이해서 얘기하는 건 아닌지, 내 주장에 누군가 대응을 해도 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건 아닌지 등등, 각가지 두려움으로 인해 많이 위축된 상태에서 활발히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큰 도전이 되었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교 체육관에 있는 라켓볼 코트로 직행해서 수업시간에 쌓인 답답함을 운동으로 풀던 기억도 난다.) 

단지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읽기 과제들을 제한된 시간에 소화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많은 시간을 책과 article을 읽는데 할애하고서도 때로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어렴풋한' 이해만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해야 하기도 했다. 

페이퍼(paper)를 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 한국에서 한글로 페이퍼를 쓸 때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에 와서 영어로 페이퍼를 쓰면서 느낀 한계 -sophisticated한 사고와 논리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해 써 놓고 보면 아주 단순하게 보이던- 때문에 아주 많이 좌절감을 느끼던 기억. 

상대방에게 나를, 나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것. 내가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한계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을 오랫 동안 하는 것. 이러한 경험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에 입히는 큰 상처와 피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거나 이민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더러는 아예 그러한 상처에 대한 민감함을 '마비'시키거나 그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해서 더 이상 그런 것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으며 살아가려 하기도 하고.  

나에게 언어 장벽으로 인한 도전은 그 후로 아주 오랫 동안 계속되었고 그 장벽을 넘으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Native speaker가 아니면서 영어를 자유롭게 쓰게 된다는 게 가능한 목표일까?' 내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 때로는 깊은 회의로.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일이지만,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것.   

내 '길고도 험난했던' 경험을 통해,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꾸준히 영어를 향상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상황을 가능하면 많이 만들어 실제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영어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과 관련되었든 혹은 사교적 모임이 되었든,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는 우선 일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클래스를 가르치는 것을 수년간 해오면서 신경을 집중해 내가 쓰는 영어에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클래스가 Public Speaking이었음을 생각하면, 언어 능력 향상에 대한 pressure가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일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하이킹 그룹에 가입해 하이킹도 하고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었다.

또한 매일 신문을 읽고 자주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 등에 주의를 기울여 오고 있는 것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를 보면 누군가와 이 새로운 표현에 대해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이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큰 효과를 보게 한다는 사실.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흔히 한국에서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을 받아온 것의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문법 공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영어 실력이 늘어가면 갈수록 문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아하-'하는 깨달음을 경험하기도 하고, 더욱 더 자신있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영어를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해 내가 경험해 온 또 한가지는,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의 방법'이라는 것. 오하이오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동안에는 한 adult school의 ESL 클래스에서 assistant teacher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몇 달 후 그 클래스의 강사가 건강상 이유로 수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클래스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9년부터는 이곳 South Bay Literacy Council (식자율(literacy rate)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로, 성인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며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에서 volunteer tutor로 ESL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한가지라도 더 확인해 보게 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씩 쌓여가면서 세세한 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더욱 영어를 향상시키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SBLC에서 tutor를 하게 된 동기는, 내가 미국에 와서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커뮤니티 클래스들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한 'pay it forward'의 의미가 가장 크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배우고 익숙해져 온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의 울타리를 넘어서, 다른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중요한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다양한 사고와 생활 방식을 배우기 위해선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열린 마음으로 고려해 보는 노력도 따라야 할 것이지만, 일단 그러한 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인 언어를 소유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게 하는 특권이라고 하겠다.


* 몇 년 전에 올린 같은 제목의 글:
언어 장벽 극복하기 (2) - 2011년 5월 1일자 포스팅
언어 장벽 극복하기 (1) - 2011년 4월 20일자 포스팅

Saturday, August 8, 2015

추억 속으로의 여행: Columbus, Ohio

서울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 온 나에게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내가 처음 미국에 도착해 몇 달을 살았던 Redlands (Southern California)이고, 또 다른 곳은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오하이오 주립대(Ohio State University)가 있는 Columbus다. 미국에 온 첫 해부터 이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문화 충격(culture shock)을 경험했던 곳. 미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한 곳.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하루라도 빨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를 '탈출'하기를 꿈꿨었다. 그래서 졸업식 다음 날 바로 이 도시를 떠났고. 이 도시를 그리워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기 힘들었던 때. 하지만 그 후로 많은 해가 지나면서 조금씩 이 도시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자주 다니던 곳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고, 캠퍼스 곳곳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동안 몇 번 콜럼버스에서 온 사람들을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더러는 오하이오 주립대 졸업생들도 만났고. 그 때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난 듯 반가웠던 기억. 2010년에는 'Big 10 (중서부 지역 주요 대학 스포츠 연맹)' 풋볼 우승팀과 'Pac 10 (서부 지역 주요 대학 스포츠 연맹)'의 우승팀이 겨루는 Rose Bowl에서 OSU와 오레곤 대학(U of Oregon)이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게임 전날 Santa Monica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rally)에 가서 동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교 매스컷인 Brutus Buckeye와 사진도 찍고. (OSU가 U of Oregon을 꺾고 이 해의 Rose Bowl 승자가 되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콜럼버스와 학교 캠퍼스를 찾아가 봐야지 생각은 벌써 몇 년째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Detroit에 출장을 가게 된 것을 계기로 드디어 콜럼버스행을 단행하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 디트로잇에서 일이 끝나는 대로 콜럼버스에 운전해 갔다가 그곳서 월요일을 보내고 화요일에 다시 디트로잇으로 돌아와 LA 집으로 오는 계획이었다.

비행기표를 산 후 한 이틀 동안은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듯한 설레임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내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이곳저곳을 실제로 찾아가게 된다는 설레임.

드디어 8월 2일 일요일. 오후에 디트로잇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콜럼버스로 향했다. 콜럼버스까지는 2백여 마일. Freeway 75S를 타고 차를 달리다가 오하이오 주로 들어간다는 도로 표지판을 보니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 오하이오!'

Findlay를 지나며 15번 도로로 바꿔 타고 가다가, 다시 23번 도로로 합쳐졌다. 학교앞을 지나는 High Street으로 이어지는 23번 도로. 낯익은 이름. 아주 오랜만에 운전해 보는 이 길. 길 옆으로 보이는 풍경은 주로 나무들과 평원.

콜럼버스 바로 북쪽의 Delaware를 지나면서 차가 많이 밀리기 시작했다. 빨리 콜럼버스에 도착해 학교 캠퍼스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급한데 이곳서 30분 이상을 지체한 것 같다.

드디오 콜럼버스에 도착. 먼저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졸업 전 1, 2년인가를 살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요소에서 개스를 넣었는데, 여행 전 LA에서 개스 값이 갤런당 거의 4불 가까이 되었던 것과 비교해 이곳에선 반 정도 밖에 안되는 가격에 놀랐다.


콜럼버스의 한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으며
갤런당 2.09달러라는 (낮은) 가격에 놀라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전에 살던 곳을 찾았다. 정확히 주소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내가 살던 곳으로 생각되는 건물로 갔다. 2층에 위치한 아파트의 발코니가 눈에 익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서 집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내가 그곳에 살 때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갔다. 부엌과 통해 있는 거실. 책상과 컴퓨터 데스크, 책꽂이 등이 놓여 있던. 그리고 발코니로 난 커다란 유리문 앞에 놓여 있던 식탁. 추운 겨울엔 그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도 읽고,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바깥의 모습을 내다보곤 했었다. 한달에 한번씩 모이던 한국의 대학 동문들과의 모임을 이 아파트에서 가졌던 기억도 나고.


왼쪽 2층에 보이는 아파트에서 내가 살던 때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감상에 젖어 아파트 단지를 나서서 학교 캠퍼스로 향했다. 161번 도로와 23번 도로가 만나는 곳에 있는 La Chatelaine이 그대로 있는 게 보였다. 이곳에 살 때 즐겨 찾던 French bakery.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생각나던 곳.

학교에 도착해 캠퍼스 남쪽 11번가에 차를 세웠다. Morrison Tower를 비롯한 기숙사들이 모여있는 곳. High Street 건너편엔 새 건물들이 들어서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Barnes & Noble 서점 사인이 눈에 띄었고.

High Street과 11th Ave가 만나는 학교 앞길.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


High Street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제일 먼저 Ohio Union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 다니던 한국 교회의 속회(싱글인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던)원들과 자주 모임을 갖던 곳. 나중에 다시와서 안에 들어가보기로 하고 이날은 그냥 밖에서만 보고 지나쳐 갔다.


Ohio Union


High Street 건너에 Buckeye Donuts 가게와 Donatos Pizza가 그대로 있는게 보였다. 길을 건너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시러 갔던 Buckeye Donuts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에 건물은 개축을 한 것 같은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크게 달라진게 없어 반가웠고. 20대로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주문을 받고 있었고, 그 또래의 다른 한 남자가 주문받은 샌드위치 등을 만들고 있었다. 도넛을 진열해 놓은 케이스도 전과 다름없었고, 도넛의 종류도 눈에 익었다. '코코넛 케익 도넛'을 하나 시켜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게 가운데 네모나게 둘러 난 카운터 한쪽에. 전에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리스에서 왔다는 가게 주인이 단골들과 열띤 토론을 나누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기억. 벽에 걸린 한 사진 속에 그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주문을 받는 사람에게 그 주인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계속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주문을 받기에 바쁜 모습이라 그럴 기회가 없었다. 잠시 앉아있는 동안, 이 도넛 가게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고 도넛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 몇몇을 떠올렸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 그들의 대부분은 이제 안부도 알 수 없는.

도넛 가게를 나서서 Woodruff Ave.를 따라 걸었다. 길 건너로 기숙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공사가 한창이라 길을 막아놓아 접근하지 못하게 해 놓았다. 건물들 사이로 내가 살던 기숙사 Jones Tower의 모습이 보였다. 공사에 쓰이는 중장비들의 모습과 함께. 기숙사안에 들어가보는 것을 많이 기대하고 있던 차라 실망도 컸다.

캠퍼스 안으로 다시 발길을 돌려 이공계 건물들 사이를 지나 Main Library가 있는 Oval에 도착했다. 도서관 앞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이 문을 닫는 밤 열두시까지 공부를 하다가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 문을 나서며 느꼈던 뿌듯함(밤 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다는)과 서글픔(지치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집생각도 나면서 느끼던)이 생생하게 기억되어져 왔다.



Main Library 앞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University Hall.
캠퍼스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건물

The Oval: High Street으로 향하는 길


다음 날 La Chatelaine에서 아침을 먹었다.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던 곳. 더러는 아주 많이 힘들 때 찾아와서 커피를 시켜놓고 일기장 속에 한바탕 속 얘기를 털어놓곤 하던 곳.


French Bakery 'La Chatelaine' in Worthington

La Chatelaine 앞길


아침 식사 후 Scioto(사이요또) River를 보러 갔다. High Street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Lane Ave.로 우회전해서 계속 차를 달렸다. 캠퍼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샤핑몰을 하나 지나갔다. 또 하나의 La Chatelaine과 Graeter's Ice Cream이 있는. 이곳도 자주 왔던 곳인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서 이 가게들 외엔 옛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들었다. Riverside Dr.에서 우회전을 해 조금 올라가니까 Scioto River를 따라 난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처음 콜럼버스에 와서 이 강을 보러왔을 때 그 이름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살던 지역으로 그때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Scioto River 

Scioto River 건너편에 보이는 집들



Scioto 강변의 Griggs Park



공원을 나서서 계속 Riverside Dr.를 따라 학교 남서쪽에 위치한 Grandview Heights로 차를 달렸다. 내가 즐겨 찾던 Grandview Theater를 보기 위해서다. 콜럼버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영화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었는데, 특히 independent 영화나 외국 영화를 즐겨 보았었다. 콜럼버스에서 오직 두, 세개의 극장에서만이 이런 영화들을 상영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극장은 그 중의 하나다.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들 중 몇몇을 이 극장에서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날 이 극장에선 'Mission Impossible'을 상영하고 있었고.


Grandview Theater


다음으로 찾은 곳은 콜럼버스 다운타운 남쪽의 German Village와 그 안에 위치한 Schiller Park. 내가 콜럼버스에 살 때는 이곳을 잘 몰라서 찾은 기억이 없는데, 최근에 콜럼버스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며 역사가 오래된 듯 보이는 건물들과 몇몇 레스토랑, 카페들을 볼 수 있었다.


German Village에 있는 Schiller Park



German Village에서 곧장 학교로 향해 전날 밤 미처 둘러보지 못한 건물들을 찾아갔다. 전날 처럼 11번가에 차를 세우로 근처 Siebert Hall로 향하다. 이곳은 내가 처음 OSU에 도착해서 첫학기를 살았던 기숙사. 다음 학기에 바로 대학원생 기숙사인 Jones Tower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살았던 한 학기는 내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 혼자 살기 시작한 시기라는 점에서 내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격적인 문화 충격의 시작이기도 한.

이곳에 사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기 중간 겨울의 시작 무렵 호된 감기를 치른 것이다. 한 이틀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이렇게 아프니까 더할 수 없이 서럽기도 했었고. 아프다고 만난 지 얼마 안된 이곳의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도 그렇고, 캘리포니아에 계신 부모님껜 걱정을 끼쳐드릴까봐 연락 못하고, 대신 오빠에게 전화해서 힘든 걸 하소연하던 기억이 난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교 동창 친구가 전화했다가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와 학교 근처 한국 식당에 데려가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그때 먹은 한국 음식이 내겐 마치 'soul food'과도 같아서 단지 내 몸의 에너지원이 된 것뿐 아니라 마음 속에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곧바로 감기에서 회복되었고.

Siebert Hall과 Morrison Tower를 지나 Neil Ave.에서 우회전해 Mirror Lake과 Oval, Main Library등을 둘러보았다. Mirror Lake은 여전히 좋았고. Main Library 안에 들어갔을 때 전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새롭게 단장한 모습에 많이 놀랐다.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아주 현대적인 모습. 정면에서 보는 예전 그대로의 도서관의 모습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 졸업 논문을 쓸 때 도서관 꼭대기층 개인 열람실(carrel)을 지정받아서 이용했던 기억이 있어서 꼭대기층에 가 보았다. 낡은 책들로 가득한 책꽂이를 둘러난 작은 열람실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 어떻게 보면 다락방 감옥을 연상케도 하는. 당시에 같이 논문을 쓰던 몇몇 친구들과 각각 다른 열람실을 지정받아 함께 이곳 외진 곳에서 시간을 보냈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에 이르니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 완전히 탁 트인 공간에 앉아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 분위기 좋은 카페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벽면을 따라 난 세로로 길쭉한 창문들 앞마다 편안하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일인용 의자가 놓여 있었고. 위에서 내려다 보는 캠퍼스의 모습으로 전망도 아주 좋았다.

도서관을 나와 Jones Tower까지 갔다가 다시 High Street을 따라 내려와 차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이날의 캠퍼스 투어를 마치다.


내가 첫 학기를 보냈던 기숙사 Siebert Hall

Siebert Hall을 나와 수업에 가기 위해 걷던 길


Mirror Lake:
학교 캠퍼스를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던 곳 중의 하나


Mirror Lake: 벤취에 앉아 점심을 먹던 기억도 난다.
그 때마다 호수에 있던 오리들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몰려들었었고.

Mirror Lake에서 Oval로 향하는 길

The Oval

Main Library:
앞에서 보면 예전과 다름없이 보이지만 안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

Main Library 앞 출입문.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이 문앞에 나와
친구들과 얘기를 하며 휴식을 취하던 기억

Main Library 안.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

개인 열람실(carrel)이 있던 도서관 꼭대기층은 이제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도서관 꼭대기 층: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학교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 본 Lincoln Tower와 Morrill Tower의 모습



Football Stadium:
이곳에서 졸업식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Main Library 지하에 있는 카페

Oval Mall에 있는 Orton Hall

Jones Graduate Tower:
공사중이라 전에 살던 이 기숙사 건물에 들어가 볼 수 없어서
무척이나 아쉬웠다

Buckeye Donuts!
Ohio Union 입구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디트로잇으로 떠나기 직전 Antrim Lake에 산책하러 가다. Bethel Rd.와 161번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Olentangy River Rd.에 그 입구가 있다. 호수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즐겨 찾았던 곳. 파킹랏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315번 freeway밑을 지나 호수에 이르니 예전엔 없던 deck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호수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널찍한 공간. 이곳에서 호수의 모습을 잠시 즐기고 곧 호수 주변의 trail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그동안 나무들이 많이 자라 트레일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늘져 있어서 참 좋았고. 1.2마일이라는 이 loop을 걸으며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각기 다른 호수의 모습을 즐겼다.


Antrim Lake







Antrim Lake에 있는 나무밑 벤취.
언젠가 비가 오는 날 이곳에 왔던 기억이 있다



다시 디트로잇으로 돌아가는 길. 23번 도로 어딘가에서 옥수수밭이 보이기 시작해 운전하면서 한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 콜럼버스 주변을 여행하면서 많이 보았던 옥수수밭. 이 옥수수밭의 모습마저도 가끔씩 내게 아른한 향수를 느끼게 했었다.


콜럼버스에서 Toledo를 향해 23번 도로를 달리면서
간간이 길옆으로 옥수수밭을 볼 수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한 손으로 찍은 사진이라 구도가 잘 맞지 않는다)

130마일 가까이 운전해 가다가 Toledo에 있는 Side Cut Metropark에 내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곳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단지 지도를 찾아보니 내가 운전해 가는 23번 도로에 접해 있고, 강가(Maumee River)에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곳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여러군데 하이킹 트레일도 있고.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가장 짧은 트레일의 한 부분 밖에 돌아보지 못하고 곧바로 다시 차에 올라야했던 아쉬움.


Side Cut Metropark에 있는 한 trail




얼마 후 오하이오 주를 뒤로 하고 미시간 주로 들어섰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많이 그려오던 내 '귀향 여행'은 끝을 맺었고. 언제 다시 콜럼버스를 찾을 기회가 있을까...? 글쎄, 지금으로선 회의적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또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내 인생의 한 부분, 특히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했던 새로운 내 인생의 첫번째 장을 되돌아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