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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19, 2015

언어 장벽 극복하기 (3) - My Story

미국에서 3, 4년이나 그 이상 살았다고 하면 영어를 웬만큼 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서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저절로 영어가 느는 것이 아님을 안다. 특히 내가 사는 이곳 Los Angeles의 경우는 한국 커뮤니티가 아주 잘 발달해서 영어를 못해도 일상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다. 그것이 한편으론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영어를 향상시키려는 동기 부여가 줄어든다는 면에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어라는 언어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불편을 줄인다'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라는 적극적 이유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이민왔을 때 내 영어 실력은 '한국 사람'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마칠 동안 한번도 미국을 비롯한 외국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학 때 영어 회화 써클에 나가기도 했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해 치른 TOEFL 점수도 괜찮아서 나름 자신만만하게 미국에 도착했다. 같은 해 오하이오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 가족들이 사는 캘리포니아에 머물면서 집 근처 adult school에서 영어 회화 실력을 늘리려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

그 해 가을 박사 과정의 첫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의 '길고 험난한' 영어와의 struggle이 시작되었다. 내가 첫번째로 느낀 언어 장벽은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하는 얘기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인 의미는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를 다 이해하는데는 힘이 들었다. 많은 외국 학생들이 하듯 수업 내용을 녹음해 나중에 다시 들어보기도 했지만 이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곧 깨달았다. 우선은 다시 듣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처음 알아듣기 힘든 내용은 다시 들어도 마찬가지로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졌던 또 다른 경우는 세미나로 진행되는 수업시간에서였다. 교수의 강의가 전혀 없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토론으로 전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갔어도 당장 토론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고가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토론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언급된 내용을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되풀이해서 얘기하는 건 아닌지, 내 주장에 누군가 대응을 해도 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건 아닌지 등등, 각가지 두려움으로 인해 많이 위축된 상태에서 활발히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큰 도전이 되었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교 체육관에 있는 라켓볼 코트로 직행해서 수업시간에 쌓인 답답함을 운동으로 풀던 기억도 난다.) 

단지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읽기 과제들을 제한된 시간에 소화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많은 시간을 책과 article을 읽는데 할애하고서도 때로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어렴풋한' 이해만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해야 하기도 했다. 

페이퍼(paper)를 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 한국에서 한글로 페이퍼를 쓸 때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에 와서 영어로 페이퍼를 쓰면서 느낀 한계 -sophisticated한 사고와 논리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해 써 놓고 보면 아주 단순하게 보이던- 때문에 아주 많이 좌절감을 느끼던 기억. 

상대방에게 나를, 나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것. 내가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한계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을 오랫 동안 하는 것. 이러한 경험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에 입히는 큰 상처와 피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거나 이민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더러는 아예 그러한 상처에 대한 민감함을 '마비'시키거나 그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해서 더 이상 그런 것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으며 살아가려 하기도 하고.  

나에게 언어 장벽으로 인한 도전은 그 후로 아주 오랫 동안 계속되었고 그 장벽을 넘으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Native speaker가 아니면서 영어를 자유롭게 쓰게 된다는 게 가능한 목표일까?' 내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 때로는 깊은 회의로.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일이지만,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것.   

내 '길고도 험난했던' 경험을 통해,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꾸준히 영어를 향상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상황을 가능하면 많이 만들어 실제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영어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과 관련되었든 혹은 사교적 모임이 되었든,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는 우선 일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클래스를 가르치는 것을 수년간 해오면서 신경을 집중해 내가 쓰는 영어에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클래스가 Public Speaking이었음을 생각하면, 언어 능력 향상에 대한 pressure가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일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하이킹 그룹에 가입해 하이킹도 하고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었다.

또한 매일 신문을 읽고 자주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 등에 주의를 기울여 오고 있는 것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를 보면 누군가와 이 새로운 표현에 대해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이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큰 효과를 보게 한다는 사실.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흔히 한국에서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을 받아온 것의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문법 공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영어 실력이 늘어가면 갈수록 문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아하-'하는 깨달음을 경험하기도 하고, 더욱 더 자신있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영어를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해 내가 경험해 온 또 한가지는,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의 방법'이라는 것. 오하이오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동안에는 한 adult school의 ESL 클래스에서 assistant teacher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몇 달 후 그 클래스의 강사가 건강상 이유로 수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클래스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9년부터는 이곳 South Bay Literacy Council (식자율(literacy rate)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로, 성인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며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에서 volunteer tutor로 ESL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한가지라도 더 확인해 보게 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씩 쌓여가면서 세세한 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더욱 영어를 향상시키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SBLC에서 tutor를 하게 된 동기는, 내가 미국에 와서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커뮤니티 클래스들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한 'pay it forward'의 의미가 가장 크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배우고 익숙해져 온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의 울타리를 넘어서, 다른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중요한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다양한 사고와 생활 방식을 배우기 위해선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열린 마음으로 고려해 보는 노력도 따라야 할 것이지만, 일단 그러한 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인 언어를 소유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게 하는 특권이라고 하겠다.


* 몇 년 전에 올린 같은 제목의 글:
언어 장벽 극복하기 (2) - 2011년 5월 1일자 포스팅
언어 장벽 극복하기 (1) - 2011년 4월 20일자 포스팅

1 comment:

  1. 오랜 시간 언어를 잘 준비하고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첫 강의를 들은 후 느꼈던 좌절감과 당혹스러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많이 공감이 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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