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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20, 2015

내가 '나'일 수 있는 조건 - 영화 'Still Alice'를 보면서 생각하다

지난 주말 Julianne Moore가 주연한 영화 'Still Alice'를 보았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본 몇 주 전부터, 또한 이 영화 평을 신문에서 읽고는 더욱 더, 이 영화가 개봉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LA 개봉 첫날인 지난 금요일 저녁, 한껏 기대에 부풀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의 스토리는 Columbia 대학 언어학 교수인 주인공 Alice가 알쯔하이머(Alzheimer) 증상들을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학생들과 청중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동안 단어들을 잊어버려 말문이 막히는 것에서부터, 늘 다니던 캠퍼스에서 길을 잃는 것 등등. 이 병의 진단을 받고 차츰차츰 기억과 사고 작용이 쇠퇴되어 가면서 그녀가 겪는 갈등과 방황, 그리고 주변의 가족들 - 남편과 성인이 된 세 아이들- 이 겪는 고통스러운 모습들이 영화에 묘사되고 있다.

알쯔하이머를 겪으면서 기억과 언어 사용 능력을 잃어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가까이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특히 언어학 전문가로서 그동안 이 분야에 많은 연구와 지식을 쌓아온 주인공 Alice의 경우는 그래서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극에서 다른 극으로의 더욱 큰 추락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우리가 우리의 언어 능력과 지적/사고 능력을 잃었을 때 과연 아직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 아니면 이미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버린 걸까.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제목은 'Still' Alice. 그래도 '여전히' Alice라는 것? 그녀의 남편의 경우처럼, 그녀의 스마트함과 지적인 세계 -미모 뿐 아니라-에 마음이 끌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경우에, 그 상대가 그 스마트함과 지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에 대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또 하나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Alice가 아직 알쯔하이머 초기 단계일 때 자신에게 보내는 비디오 메시지를 녹화해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것을, 이제 증상이 많이 진전된 또 하나의 그녀가 보게 되는 장면이다. 둘 다 Julianne Moore가 연기한 것이지만, 같은 사람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차이를 볼 수 있다. 비디오 속의 그녀는 아주 샤프한데 비해, 이 비디오를 지켜보는 그녀는 모든 것이 많이 느슨해진 모습 - 눈빛과 얼굴 표정, 몸 동작 등. 이 비디오는, 그녀의 상태가 악화되어 자기 이름과 생일 등의 기본적인 정보도 기억 못하게 되면 미리 침실의 옷장 서랍 속에 준비해 둔 여러 알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다. 우연히 이 file을 열어보게 된 그녀는, 이 비디오에서 '이전'의 자신이 지시한 대로 따라하려 하지만 침실로 가는 도중에 그 지시를 이미 잊어버려 몇 번이나 다시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결국 그녀의 랩탑 컴퓨터를 침실로 옮겨가 서랍 속 깊숙히 숨겨진 수면제 병을 발견하고 지시대로 먹으려 하는 찰나 그녀의 caretaker가 도착하게 되고 거기에 관심이 끌린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수면제들을 모두 떨어뜨리게 된다.

이 장면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는, 이 장면이 내게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기 때문. 병이 많이 진전된 그녀의 삶이란 건, 이전의 그 샤프한 그녀가 생각하기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의 'essence'를 잃어버린, 더 이상 그녀 자신이라고 할 수 없는 타인. 그런 모습의 자신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는 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기에 그 비디오를 녹화해 놓은 것이리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미 그러한 사고 작용을 잃어버린 그녀 또한 엄연히 현재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 이미 독립된 사고와 판단 능력을 거의 잃어버려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런 '현재'의 그녀에게 '과거'의 그녀가 어떤 authority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런 현재의 그녀가 아직도 과거의 그녀에게 '속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Julianne Moore의 연기 때문. 이미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그녀에게 배우로서 큰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녀의 연기에 빠져 들었다. 병이 진전되면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감탄할 만큼의 현실적인 연기로 표현해 냈다는 생각. (찾아보니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그동안 20편 가까이 보았는데, 그 중에서 'What Maisie Knew', 'The Kids are All Right', 'The Hours', 'Magnolia', 'Far from Heaven' 등의 영화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Far from Heaven'에서 그녀의 연기를 많이 좋아했던 기억도 나고.)

Still Alice. 한마디로 친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보고 난 후 함께 커피 마시며 진지하게 얘기나누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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