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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ly 8, 2016

"누가 먼저 시작했니?"

다섯 형제의 막내로 자란 내게 두 살 위의 오빠가 있다. 어릴 땐 친구처럼 함께 놀며 지냈는데, 그런 중에 토닥토닥 싸우기도 많이 했다. 싸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다른 방에 계시던 엄마께서 '엄마 (너희들 혼내주러) 지금 간다!'라고 먼저 경고를 하시고, 그래도 싸움 소리가 멈추지 않으면 드디어 모습을 나타내셔서 잘잘못을 가려주시고 싸움을 말리시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께서 빠뜨리지 않고 물으시던 것이 '누가 먼저 시작했니?'하는 질문. 먼저 시작한 사람의 잘못을 물으시던 것.

"누가 먼저 시작했니?" --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나 갈등이 생길 때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문제의 발단이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할 경우가 많다는 것. 문제의 발단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 - 즉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네가 먼저 나를 존중해주지 않으니까 나도 너를 존중하지 않게 됐지", "네가 먼저 이기적으로 나오니까 나도 내 이득을 생각하게 됐지", "네가 먼저 나를 멀리하니까 나도 너를 멀리하게 됐지", 등등. 잘못은 먼저 시작한 상대방에게 있고, '희생자'인 나의 대응은 그래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은 단지 두 개인의 관계뿐 아니라, 그룹과 그룹간의 관계나 회사간의 관계, 나라사이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쪽에 잘못이 있고, 그에 대응한 내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

그런데 많은 인간 관계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니?'를 따지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얼핏보면 상대방의 잘못으로 시작한 것 같은 경우도 더욱 깊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인의 제공은 나인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내가 그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방의 행동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항상 그날그날 새롭게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 그동안의 쌓여온 오랜 history가 오늘 겪고 있는 관계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때로는 발단이 된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에도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별 뜻없이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겐 커다란 바위가 되어 가슴을 무겁게 누르기 시작해도 (혹은 흔히 사용하는 비유처럼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러도) 나는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행동이 그 바위나 비수의 상처에서 나온 '반작용(reaction)'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에게 상대방이 먼저 싸움을 시작한다고 여기게 된다.

"누가 먼저 시작했니?" -- 그래서 이 질문은 그 대답을 찾기가 간단하거나 쉽지도 않고, 때로는 그 대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사실(fact)을 놓고도 그것을 해석하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고, 그에 앞서 무엇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나와 상대방이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Thinking, Fast and Slow'(Daniel Kahneman저)에서 저자가 많은 예를 들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지각이나 인식(perception)이란 것이 얼마나 왜곡되고(distorted), 편향되고(biased), 많은 착각(illusion)에 영향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이같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 자체에 회의를 갖게도 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서로의 행동에 대한 인식을 대화를 통해 나눠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과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이렇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하고, 또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내 인식이 앞서 말한 왜곡, 편향, 착각에 근거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결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Sunday, January 17, 2016

새로 즐기게 된 podcast, 'Planet Money'

주변에 podcast를 즐겨듣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요즘은 그 종류도 다양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도 하다.

지난 2013년 7월 내 블로그에 올린 한 포스팅에서 Terry Gross의 인터뷰 프로그램 'Fresh Air' (NPR-National Public Radio)를 즐겨 듣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직도 그녀의 인터뷰들은 내 podcast playlist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변함없이 즐겨 듣는 프로그램이다.

최근에 또 하나의 NPR podcast를 듣기 시작했는데, 바로 'Planet Money'라는 프로그램이다. 폭넓게 말해서 economics 와 business에 관계된 주제들을 흥미있게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한 프로그램의 길이가 20분 안팎이라, 내 경우 treadmill 위에서 운동을 하면서 듣기에 아주 적당한 길이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최근에 들은 'The Cost of Crossing'이라는 프로그램은,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사람들이 거치는 과정과 그 과정에 드물지 않게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들을 실제로 개인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 -밀입국자로, 또는 밀입국자 중개인으로- 과의 인터뷰및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며칠 전에 들은 'Bagging a Birkin'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그 가격이 6만불에 이른다는 명품 가방 Birkin이 지난 30년간 꾸준한 사랑 -일부층에 국한된 것이겠지만- 을 받아올 수 있게 한 마케팅 전략 -'Play hard to get'- 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The cost of crossing:
http://www.npr.org/sections/money/2016/01/08/462438973/episode-675-the-cost-of-crossing

*Bagging a Birkin:
http://www.npr.org/sections/money/2015/12/25/460870534/episode-672-bagging-a-birkin


Friday, November 20, 2015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올해 읽은 책 중에 'Babel No More'라는 책이 있다. Michael Erard가 쓴 이 책은 그 부제 'The search for the world's most extraordinary language learners'가 말하듯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하기로 알려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그의 책 전반부에 소개된 Giuseppe Mezzofanti라는 이탤리 사람은 적어도 30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1,700년대 말부터 1,800년대에 살았던 그에 관한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그러한 구전 사실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 과연 그가 그 각각의 언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구사했는지에 관한 그의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세계 각곳에서 polyglot (수개 국어를 쓰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 과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 방식을 배운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처럼 내가 처음 접한 외국어는 영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 대학 1학년 때까지 영어 클래스를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영어를 공부했지만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그 언어에 반영되어 있는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신나고 흥미로운 것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신남'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은 미국에 온 첫 해 잠시 adult school에 다니면서다. 오하이오에 공부하러 떠나기 전 몇 달간 집근처의 학교에서 영어 회화 수업을 들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한 여자 선생님의 클래스. 조르단, 멕시코를 비롯한 몇몇 다른 나라에서 온 대, 여섯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작은 클래스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 간에 공통된 언어는 오직 영어뿐. 아직 서툰 영어지만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열심히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제 2 외국어로 공부한 불어를 배울 때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한국서 고등학교 1학년때와 대학 1학년때 총 2년 동안 불어를 공부했는데, 불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곧 이 언어에 대한 관심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재미있게 불어를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관심은 대학 졸업 후에도 경복궁 맞은 편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에 이민온 후 오하이오에서 공부하면서도 프랑스 영화를 열심히 보았던 기억도 있고, 그 후 뉴욕에 살았을 때는 직장 근처에 있던 Alliance Française의 회원으로 가입해 일주에 한번씩 상영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다. 켈리포니아에 돌아와서는 인터넷 동호인 그룹인 'meetup.com'의 불어 그룹에 가입하면서 또 다시 불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몇 년 전에는 집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불어 수업을 듣기도 했다.  

제 3 외국어인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일본에 2주간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다. 그래서 그 해 가을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기초 일본어 수업을 들었는데, 일본인 여자 선생님이 차근차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 후 기초 회화 클래스를 듣기도 하고, 일본어 meetup 그룹을 조직해서 한동안 일본어를 연습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제 4 외국어인 스페인어는 정말 오랫동안 배우고 싶어하던 언어. LA에 살면서 생활 전반에서 아주 쉽게, 자주 접하게 되는 언어다. 맘만 먹으면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위에 얼마든지 있고. 이런 기회를 외면하고 산다는 걸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지난 해 여름 학기 동안 커뮤니티 칼리지의 단기 스페인어 클래스에 수강 신청을 했다. 보통 16주에 끝내는 과정을 8주 동안에 커버하는 클래스였다. 그만큼 매일매일 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았고. 그래서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아주 재미있게 8주간의 수업을 마쳤고. 운전하면서 보는 대형 사인이나 길 이름, 지역 이름, 음식 이름 등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도 좋았고, 흔히 듣게 되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아는 단어와 표현들을 접하게 될 때 많이 반갑기도 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외국어를 빨리 매스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얼마나 동기 부여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 그 언어가 더욱 큰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더욱 빨리 그 언어를 배우려는 동기가 강해진다고 하겠다. 내 경우를 보면,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이해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바램에서 더욱 열심히 공통의 언어인 영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특히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과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에서 영어 공부에 전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불어의 경우에는, 프랑스 문화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학 졸업 후에도 꾸준히 이 언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더 큰 욕구'라는 것이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의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 언어가 '사용중'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동기 부여와 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 사는 것이, 특히 다양한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이곳 LA에 사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데 큰 장점을 갖는다고 하겠다. 불어가 되었든, 일어가 되었든, 스페인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 어렵지 않게 native speaker들을 찾을 수 있고 그들과 살아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큰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특히 그들과 '실전'에서 부딪쳐가며 끊임없는 실수와 '쪽팔림'('embarrassment'를 한국말로 옮기는데 이보다 더 생생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을 경험하면서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려는 동기 부여를 얻을 수 있다. 무슨 언어든 그 언어를 빨리 매스터하기 위해선 가능한 한 많이 그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대개의 경우 그런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려 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런 반응임을 생각하면, 외국어를 매스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른 해에 비해서 올해는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많이 게을렀던 해였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외국어를 늘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많이 실천을 못했던 것 같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 항상 빼놓치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자는 것인데, 굳이 내년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것 없이 오늘부터라도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할애해서 매일매일 외국어를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자 생각한다. 그렇게 공부한 것들을 실제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기회도 갖고. 내 일생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언어들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싶은 꿈. 그 꿈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할 때는 바로 오늘.   

Wednesday, August 19, 2015

언어 장벽 극복하기 (3) - My Story

미국에서 3, 4년이나 그 이상 살았다고 하면 영어를 웬만큼 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서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저절로 영어가 느는 것이 아님을 안다. 특히 내가 사는 이곳 Los Angeles의 경우는 한국 커뮤니티가 아주 잘 발달해서 영어를 못해도 일상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다. 그것이 한편으론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영어를 향상시키려는 동기 부여가 줄어든다는 면에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어라는 언어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불편을 줄인다'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라는 적극적 이유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이민왔을 때 내 영어 실력은 '한국 사람'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마칠 동안 한번도 미국을 비롯한 외국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학 때 영어 회화 써클에 나가기도 했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해 치른 TOEFL 점수도 괜찮아서 나름 자신만만하게 미국에 도착했다. 같은 해 오하이오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 가족들이 사는 캘리포니아에 머물면서 집 근처 adult school에서 영어 회화 실력을 늘리려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

그 해 가을 박사 과정의 첫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의 '길고 험난한' 영어와의 struggle이 시작되었다. 내가 첫번째로 느낀 언어 장벽은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하는 얘기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인 의미는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를 다 이해하는데는 힘이 들었다. 많은 외국 학생들이 하듯 수업 내용을 녹음해 나중에 다시 들어보기도 했지만 이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곧 깨달았다. 우선은 다시 듣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처음 알아듣기 힘든 내용은 다시 들어도 마찬가지로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졌던 또 다른 경우는 세미나로 진행되는 수업시간에서였다. 교수의 강의가 전혀 없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토론으로 전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갔어도 당장 토론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고가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토론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언급된 내용을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되풀이해서 얘기하는 건 아닌지, 내 주장에 누군가 대응을 해도 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건 아닌지 등등, 각가지 두려움으로 인해 많이 위축된 상태에서 활발히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큰 도전이 되었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교 체육관에 있는 라켓볼 코트로 직행해서 수업시간에 쌓인 답답함을 운동으로 풀던 기억도 난다.) 

단지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읽기 과제들을 제한된 시간에 소화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많은 시간을 책과 article을 읽는데 할애하고서도 때로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어렴풋한' 이해만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해야 하기도 했다. 

페이퍼(paper)를 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 한국에서 한글로 페이퍼를 쓸 때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에 와서 영어로 페이퍼를 쓰면서 느낀 한계 -sophisticated한 사고와 논리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해 써 놓고 보면 아주 단순하게 보이던- 때문에 아주 많이 좌절감을 느끼던 기억. 

상대방에게 나를, 나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것. 내가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한계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을 오랫 동안 하는 것. 이러한 경험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에 입히는 큰 상처와 피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거나 이민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더러는 아예 그러한 상처에 대한 민감함을 '마비'시키거나 그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해서 더 이상 그런 것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으며 살아가려 하기도 하고.  

나에게 언어 장벽으로 인한 도전은 그 후로 아주 오랫 동안 계속되었고 그 장벽을 넘으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Native speaker가 아니면서 영어를 자유롭게 쓰게 된다는 게 가능한 목표일까?' 내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 때로는 깊은 회의로.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일이지만,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것.   

내 '길고도 험난했던' 경험을 통해,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꾸준히 영어를 향상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상황을 가능하면 많이 만들어 실제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영어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과 관련되었든 혹은 사교적 모임이 되었든,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는 우선 일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클래스를 가르치는 것을 수년간 해오면서 신경을 집중해 내가 쓰는 영어에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클래스가 Public Speaking이었음을 생각하면, 언어 능력 향상에 대한 pressure가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일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하이킹 그룹에 가입해 하이킹도 하고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었다.

또한 매일 신문을 읽고 자주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 등에 주의를 기울여 오고 있는 것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를 보면 누군가와 이 새로운 표현에 대해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이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큰 효과를 보게 한다는 사실.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흔히 한국에서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을 받아온 것의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문법 공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영어 실력이 늘어가면 갈수록 문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아하-'하는 깨달음을 경험하기도 하고, 더욱 더 자신있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영어를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해 내가 경험해 온 또 한가지는,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의 방법'이라는 것. 오하이오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동안에는 한 adult school의 ESL 클래스에서 assistant teacher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몇 달 후 그 클래스의 강사가 건강상 이유로 수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클래스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9년부터는 이곳 South Bay Literacy Council (식자율(literacy rate)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로, 성인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며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에서 volunteer tutor로 ESL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한가지라도 더 확인해 보게 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씩 쌓여가면서 세세한 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더욱 영어를 향상시키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SBLC에서 tutor를 하게 된 동기는, 내가 미국에 와서 영어를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커뮤니티 클래스들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한 'pay it forward'의 의미가 가장 크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배우고 익숙해져 온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의 울타리를 넘어서, 다른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중요한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다양한 사고와 생활 방식을 배우기 위해선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열린 마음으로 고려해 보는 노력도 따라야 할 것이지만, 일단 그러한 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인 언어를 소유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게 하는 특권이라고 하겠다.


* 몇 년 전에 올린 같은 제목의 글:
언어 장벽 극복하기 (2) - 2011년 5월 1일자 포스팅
언어 장벽 극복하기 (1) - 2011년 4월 20일자 포스팅

Thursday, June 25, 2015

Marc Maron podcast interview with Obama

지난 주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 LA를 찾았을 때 Marc Maron - podcast 'WTF'으로 잘 알려진 stand-up comedian - 과 인터뷰를 했다. 그 podcast가 이번 주 월요일에 공개되었고. Marc Maron의 여느 podcast 처럼 Pasadena에 있는 그의 집 차고에서 진행된 이 인터뷰를 들으며,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 -'reasonable, logical, and approachable'- 를 다시 한번 확인하다.

*아래 웹사잇에 가면 Marc Maron의 Obama 대통령 인터뷰를 들을 수 있다:
http://www.wtfpod.com/podcast/episodes/episode_613_-_president_barack_obama

*오바마 대통령과의 인터뷰가 끝난 몇 시간 후, Marc Maron이 NPR 프로그램인 'Fresh Air'의 진행자 Terry Gross와의 인터뷰에서 '(awesomely) Crazy!'했던 그의 오바마 인터뷰 경험과 그 뒷 얘기를 나누고 있다:
http://www.npr.org/sections/itsallpolitics/2015/06/22/416481081/obama-visits-marc-marons-garage-cats-annoyed-they-were-shut-in-bedroom

Monday, August 19, 2013

문화 충격(Culture Shock)에 잘 대처하기

직장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relocation training을 제공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겪을 수도 있는 문화 충격(culture shock)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히, ‘모든게 잘 되겠지’라고 기대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향한다는 면에서는 나쁠 것 없다고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도와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문화 충격의 존재를 미리 인식하고, 그 원인과 증상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이 충격에 잘 대처해 나갈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새로운 세계에서 잘 적응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됨을 강조하고 싶다.


‘문화 충격’은 한 마디로, ‘익숙한 환경에서 낯선 환경으로 옮겨 생활하게 될 때 경험하는 과도기적 부적응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마다 정도와 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사람들이 비슷한 문화 충격의 단계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만든 culture shock model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ups-and-downs’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새로운 문화/세계를 경험하게 되면 새로움에 대한 흥분과 신기함 등으로 Honeymoon Stage를 경험하게 된다 . 내 경험을 비추어봐도,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오랫동안 기대해 오던 곳에 ‘마침내' 도착하게 되었다는 흥분과 새로운 세계에서 펼쳐질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그야말로 ‘랄랄라' 상태를 한동안 경험했었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해 실수를 해도, 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내게 모두들 매우 너그럽게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치 않은 생활 방식에서 오는 불편함에 대한 불평이 한두가지씩 쌓이게 된다.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항상 사람들이 너그럽고 참을성있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동안 장미빛으로 채색되었던 현실에 조금씩 눈뜨게도 된다. 특히 사회 규범과 규칙에 익숙치 않음으로 실수들을 범하게 되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고 행동하는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에 대한 혼동을 경험하면서, 또한 상대방의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내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의도한 대로 정확히 이해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좌절감과 때로는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Hostility Stage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부당하고 불공평하게 대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불평이 늘어가며, 예전에 살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끼게도 된다. 점차 자신감을 잃게 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회피하게도 되고, 심하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부적응이 심화되어 결국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적응을 포기하고 고립된 생활을 하거나,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단계를 겪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나에게 특히 문제가 있거나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단계의 경험이 결국 부적응이라는 결론으로 이르게 될 전주곡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이같은 hostility의 강도가 조금씩 약화되고 점차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게 되는 In-sync Stage (or Adaptation Stage)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힘써야 할 것이다.


문화 충격에 잘 대처하는 방법을 얘기할 때 내가 즐겨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내가 어릴 때 어항에 물고기를 키운 적이 있다. 때맞춰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주는 것은 내 담당이었는데, 어머니께서 항상 내게 ‘한꺼번에 새 물로 다 갈아주지 말고, 새 물과 그동안 물고기들이 헤엄치던 물을 반반씩 섞어주라'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있다. 항상 어느 정도는 익숙한 환경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될 때에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생활하게 되면 그곳의 문화에 하루 빨리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한국말은 전혀 쓰지 않고, 한국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도 피하고, 모든 것을 ‘새 물'로 갈아치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너무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 쉽다. 어느 정도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그같은 안정감이 뒷받침될 때 새로운 환경에 맞설 힘도 생기게 된다. 가족및 오랜 친구들과 연락을 계속하면서 격려를 받기도 하고,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도 교류하면서 내 상황이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하고, 문화 충격을 이미 잘 이겨낸 사람들을 만나 좋은 조언과 함께 용기와 희망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끊임없이 update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새로운 문화의 규범과 규칙에 대해 배우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도 익히고,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언어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문화 적응 과정에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상대방의 메시지(언어로 된 메지지는 물론, 몸짓이나 표정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까지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것이 사업상의 관계든 사교적인 관계든 인간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이같은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 자신감의 증강이나 약화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생각할 떄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문화 충격을 잘 극복하지 못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만큼 내가 가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신감에 큰 손상을 입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피하게 될 수 있고, 여러가지 사회적 관계에서도 많이 위축되어 점점 고립되어 가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본다. 그럴수록 적응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어, 악순환의 연속으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반면, 문화 충격을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많이 갈등하면서도 지혜롭게 그 충격을 잘 헤쳐나가게 되면 많은 긍정적 결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resilience를 강화하게 된다. 한마디로, 현실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그 역경을 헤쳐나가는 기본 역량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터득한 기술과 지혜, 그리고 자신감은 앞으로 또 다른 역경의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그 역경을 헤쳐나가게 하는 힘과 자원이 될 수 있다. 여러가지 면에서 도전을 받는다는 것은, 그 도전에 응전하면서 많은 성장을 이루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해심이 커질 수 있다. 나를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바로 empathy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다고도 하겠다.   

문화 충격을 경험한다는 건, 나에게 익숙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서 보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보다 많이 성장하기 위해 내린 내 '진취적'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설사 그것이 내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 해도, 문화 충격을 겪고 그것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동안 내가 그만큼 자랄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문화 충격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보다 이성적으로 차분히 접근해 나간다면, 어느 때인가 많이 자라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Thursday, July 4, 2013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Fresh Air’ on NPR hosted by Terry Gross


대학에서 journalism을 전공하고 졸업 후 journalist로 일한 경험이 있는 내게,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이곳의 대중 매체들을 매일 접하며 산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미국에 사는 오랜 기간 동안 내 관심과 흥미를 끈 프로그램이 몇몇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내가 자주 즐겨듣는 NPR (National Public Radio)의 ‘Fresh Air’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이다. NPR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프로그램을 즐겨듣는 이유는 그 진행자인 Terry Gross의 인터뷰 스타일을 아주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놓고 인터뷰를 해도 누가 그 인터뷰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Terry Gross의 프로그램을 들을 때마다, 인터뷰 초반부터 interviewee들과 쉽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 매우 개인적인 질문이나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질 때조차도, 그래서 interviewee들이 기분을 상하거나 방어적이 되기 쉬운 상황에서도, 그녀 특유의 아주 캐주얼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보이는 인터뷰 기술로 interviewee들이 자진해서 속깊은 얘기들을 털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그같은 그녀의 이해력은 interviewee에 대한 철저한 사전 research와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인간적 호기심및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아래 내가 가장 최근에 들은 그녀의 인터뷰 프로그램 둘을 소개한다.

1) Interview with Chimamanda Ngozi Adichie:
소설 ‘Americanah' 의 저자. Nigeria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 갈 무렵 미국에 온 그녀가 미국에서 black African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2) Interview with Carole King:
'You’ve Got a Friend’, ‘A Natural Woman’, ‘Will You Love Me Tomorrow’, ‘So Far Away’ 등의 노래로 잘 알려진 singer-songwriter.
http://www.npr.org/2013/06/28/196326148/for-carole-king-songwriting-is-a-natural-talent



** [2014년 3월 23일 update - 며칠 전 들은 흥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소개한다]
Interview with Mary Roach:
우리가 먹은 음식이 입에서부터 시작해 소화되는 동안 거치게 되는 우리 몸 안의 경로를 하나하나 설명한 책 'Gulp'의 저자. 평소 자주 생각하지 않는 주제지만, 아주 경이로울 수도 있는 우리 몸의 작용을 재미있게 풀어나간 인터뷰.
http://www.npr.org/2014/03/14/290095438/in-digestion-mary-roach-explains-what-happens-to-the-food-we-eat


Monday, July 23, 2012

상처 받는 것에 대범해지기: Thoughts on Being Vulnerable


나 자신을 상처받기 쉬운, 혹은 상처받을 수도 있는 위치에 과감히 놓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익숙해 있을까. 가능하면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태도가 아닐까. 하지만 이렇듯 ‘vulnerable’한 상황을 피하려 하는 우리의 노력이,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면

최근에 볼 기회가 있었던 Brene Brown TEDx Talk은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Texas에 있는 Houston 대학의 사업사업학과 교수인 그녀는, 몇년 동안에 걸친 질적 연구를 통해 발견한 ‘vulnerability’에 대한 흥미있는 아이디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Vulnerability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이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우리 삶의 질,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만족도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때로 우리는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인간 관계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가까운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으면서 먼저 미안하단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 반대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사랑한단 말을 꺼내지 못하기도 한다.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에 직면하기 보다는 그냥 문제를 회피하거나 그 관계를 끝내버리기도 한다.

문득 지난 4월 한국에 갔을 때 보았던 영화 건축학 개론의 스토리가 생각난다. 첫사랑의 기억과 그 첫사랑을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커플이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 만나 서로 아주 많이 사랑함에도 헤어지게 된 것도, 결국 이들이 가졌던 상처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추측 속에서 관계를 발전 시키고, 추측 속에서 관계를 끝내버리는 하나의 예. 상대방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게 될 때 혹 상처 받을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날까봐 미리 겁먹고 돌아서 버리는 예.

Brown 교수가 자신의 연구 자료 분석을 통해 결론으로 얻었듯이, 이렇듯 겁쟁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정작 내 인생을 fully 경험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처 받지 않으려 조금만 주고, 조금만 받는그런 인생을 살다보면, 나중엔 그냥 별로 추억할 거리 조차 없는, 무덤덤한 삶의 기억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른지.    


                                                               Brene Brown TEDx Talk:
                                            http://www.youtube.com/watch?v=X4Qm9cGRub0

Tuesday, May 22, 2012

Comma, Or No Comma


한국말로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특히 영어로 글을 쓸 때 구두점(punctuation) 사용에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한국말에는 없는 apostrophe( ‘ ) 사용도 그렇고, colon( : )이나 semicolon ( ; )등의 사용도 애매할 때가 종종 있다. 어제 날짜 New York Times에 실린 ‘The Most Comma Mistakes’라는 글은, 구두점 중에서 comma ( , ) 사용시 흔히 범하는 실수들을 지적하고 있다. 컬럼뿐 아니라,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comments 중에도 아주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있어 꼭 체크해 보도록 권한다. 또한 구두점 사용에 관한 규칙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놓은 책 ‘Eats, Shoots and Leaves’도 권하고 싶다.   

Friday, April 13, 2012

Quiet: The Power of Introverts

최근에 Susan Cain ‘Quiet: The Power of Introverts in a World That Can't Stop Talking’이라는 읽기를 마쳤다지난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저자의 글을 읽게 계기로 그녀의 blog 종종 찾아가곤 했었는데, 때문인지 저자와 마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고, 지난 1 책이 출판되자마자 구입하기도 했다.

저자 Susan Cain 책에서 내성적인 사람들(introverts) 갖고 있는 강점들을 강조하고, 학교나 직장에서 이들의 장점을 살려줄 있는 환경을 만들어 것을 힘주어 얘기하고 있다. 특히 외향적인 사람들(extroverts) 주목받는 미국 문화에서, 자칫 열등한 성격이나 문제있는 성격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내성적 성향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와 지원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책의 출판 이후 저자 Susan 매스컴의 관심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얼마전에는 Long Beach에서 있었던 Ted Conference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TED.com 올려진 그녀의 연설은 벌써 많은 조회 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연설을 보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7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책은, 심리학 관련 서적과 학술 저널들, 그리고 그녀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직접 인터뷰를 통해 얻은 실제 케이스들을 자세히, 많이 소개하고 있는 덕분에 그녀의 주장이 더욱 생생하게 닿는다. 한편으론, ‘내성적인 성격 예찬 위해 외향적 성격을 상대적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지만, 미국 문화에서 이같은 내성적 성격이 ‘under-appreciated’ 되어온 현실을 감안하면 그같은 ‘over-compensation’ 그다지 부당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Friday, February 24, 2012

Documentary film 'My So-Called Enemy'


얼마 전 Newport Beach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이벤트에서, ‘My So-Called Enemy’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회가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감독인 Lisa Gossels 나와 관객들로부터 질문에 답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팔레스티니안, 이스라엘리, 팔레스티니안-이스라엘리 틴에이저들이 2002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Women’s Leadership program 함께 참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로를 enemy 여기면서 자라온 이들이지만, 가까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그들 각자가 처한 상황이 가져온 현실에 대한 다른 인식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처음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보였던 서로에 대한 적개심, 불신감, 증오들은 점차 상대방을 알아가면서 우정과 이해, 그리고 지역의 평화를 위해 공헌하고 싶은 공동의 사명감으로 바뀌게 된다.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틴에이저들 여섯 명의 삶을 중심으로 7년간 그들의 관계가 점점 친밀해지면서 그들의 생각과 태도가 변화되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아주 오랜 동안 끊임없이 세계 뉴스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테러 공격 뉴스. 도심의 카페에서, 결혼식에서, 혹은 학교 캠퍼스에서 테러 공격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고, 그리고 얼마 후에는 공격을 당한 측에서 보복 공격을 상대방에게 가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tit-for-tat’ 식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 그곳에서 살아가는, 특히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의 눈에, 그들 서로의 모습이 어떻게 각인되어가는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는 일이다.

영화 초반에서 보여주듯, 그렇게 자라오는 동안 사회화 과정을 거쳐 각인된 서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에 대한 필요성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마저도 사라져버리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같은 뿌리깊은 증오도, 함께 며칠을 보내며 서로가 그다지 다르지않다는 체험하면서 조금씩 허물어져가고, 7년이라는 시간에 걸친 개인적인 교류를 계속해 가면서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상대방의 시각에서 현실을 이해하는 노력으로 서서히 바뀌게 된다. 해결점을 찾기 힘든 갈등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이같은 경험은 그들을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주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하는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 삶에서 갈등은 어디에나 산재해 있다. 나라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우리가 생각할 있는 모든 형태의 인간 관계에 갈등의 소지가 존재한다. 갈등으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심해지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금만 서로에게 내밀어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게 기회를 갖게 되면, 바위의 작은 틈으로 스며든 물이 점점 힘을 더해가듯 조금씩조금씩 서로의 경직된 마음을 열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